[임동오]파리의 도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임동오]파리의 도전

[목요세평]임동오 중부대 총장

  • 승인 2011-08-17 14:23
  • 신문게재 2011-08-18 20면
  • 임동오 중부대 총장임동오 중부대 총장
▲ 임동오 중부대 총장
▲ 임동오 중부대 총장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파리는 아무래도 사람을 귀찮게 하니 파리를 좋아하는 경우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이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의 파리를 조문하는 글은 눈길을 끈다. 그중 한 글귀가 이렇다. “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소복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다산은 당대의 백성 중에서 기근과 혹한을 버티어냈으나 가혹한 징수에는 버티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파리로 환생했다고 보고 파리에게 음식을 주며 그 생전의 한을 달래주고자 이런 글을 지은 것이다. 다산은 파리를 조문하며 당대의 부패한 사회를 풍자했다.

파리와 관계된 어느 한 행동연구학자의 연구가 재미있다. 유리병 안에 파리와 꿀벌을 넣고 어두운 공간에서 병의 바닥 쪽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그러자 꿀벌은 모두 유리병 바닥으로 모여 결국 병 밖으로 나오지 못해 죽게 되었는데, 파리는 모두 병 밖으로 날아갔다는 것이다. 꿀벌은 파리보다 지능이 훨씬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꿀벌은 빛을 인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빛의 방향이 밖의 방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파리는 그렇지 못하다. 파리는 수없이 병 안을 날고 기어 다니다가 우연히 병 입구에 다다라서 나온 것이다. 꿀벌보다 파리의 행태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는 더 유리한 셈인 것이다.

다산이 살던 시대나 우리가 살던 시대나 어려움은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인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파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비해 눈 위에 서리가 덮이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오면 이를 이겨낼 재간이 그리 많지 않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든 타인으로 인해 눈앞에 닥친 문제이든 간에 평범한 사람은 소수의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 비해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일 것이다.

꿀벌은 파리보다 우수한 곤충이므로 인간 사회에 빗대면 우수한 능력을 지닌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꿀벌들이 병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 때문이다. 반면 파리는 그들에게 있는 능력이란 시도하고 또 시도해 보는 것밖에 없었다. 이 능력이 파리를 병 밖으로 탈출시키도록 만든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뛰어난 능력이 매번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변변치 못한 능력이라도 어려움을 타개하는데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파리에게는 없고 꿀벌에게 있는 능력이 오히려 그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뛰어난 능력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용한 법은 아닌 셈인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을 가리켜 88만원세대라 한다. 이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인데, 이들을 위해 기성세대에서 뚜렷한 대안을 내놓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점을 보면, 다산의 시대에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죽은 자들이 파리로 환생한 것이나 우리의 시대에 어려움을 겪고 위기에 처한 88만원세대나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빈부격차나 실업은 다산의 시대나 우리의 시대나 모두 존재한다. 애석하게도 그 시대나 우리의 시대에 그를 타파할 대안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무섭다. 잘 변하지 않는, 고착된 생각은 우리의 습관이나 의식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기 마련이다. 꿀벌이 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닌 고정관념이 그에게 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반면 파리에게는 고정관념이 없었을 것이다. 파리가 한 행동은 시도에 시도를 거듭한 것이 다일 것이다. 시대도 기성세대도 고정관념에 빠져버린다면 88만원세대의 생활과 인생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느껴지게 될 것이고 88만원세대라고 수용해버린 젊은이에게도 그런 삶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으면 이와 다를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려면 다산의 글과 같은 풍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글 속에 있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로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산의 글 속에 있는 파리와 같은 삶을 우리의 88만원세대가 살지 않도록 사회가, 정부가, 시대가 깨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 억울한 다산의 파리와 같이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젊은이에게 그러한 고통을 준 것은 바로 우리 시대이며 사회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는 고정관념을 깨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병 밖으로 탈출한 파리와 같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시도와 시도를 거듭해주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2.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3.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5.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1.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2.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5.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