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형 목원대 무역학과 교수 |
지난 한 달간의 교역현황에 대한 분석만으로 한-EU FTA를 평가하는 것은 분명 시기상조임에 틀림없다. 물론 우리 수출기업들의 한-EU FTA 활용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향후 한-EU FTA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또한 유럽산 먹을거리의 수입가격이 인하된 것은 국내 생산농가에 대한 영향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정도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은 특정 품목의 수출입 현황에 대한 단순집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당장 지난 7월 한 달간 수출이 저조했던 품목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또 나름의 개선효과에 대한 기대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이 되어버린 한-EU FTA에 따른 관세철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론상으로 FTA의 효과는 단순하다. 관세철폐에 따른 가격인하는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수입품의 가격인하가 국내 물가 안정에도 기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결 당사국간의 교역구조에 대한 분석을 전제로 한다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른바 '삼겹살 효과'처럼 유럽산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인하가 직접적인 국내 시장가격의 인하로 이어지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유럽수출기업의 입장에서 관세인하율을 반영할 필요가 적은 품목이다. 2010년 대전지역의 주요 수입품목의 상당수는 생산단계나 기술수준 등 수입품목의 수요유인이 높은 품목들이다. 결국 수출시장에서 가격인하의 주된 요인이 가격경쟁력을 통한 수요창출이라고 한다면 이들 품목의 경우 한-EU FTA에 따른 관세인하율이 그대로 가격인하폭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가의 완제품을 수입하고 중간재를 수출하는 현재의 교역구조로는 유럽시장에서 한국산 수출품목의 가격인하 유인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2010년 대전지역 권역별 수출 동향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지역의 수출증가율이 2.6%에 불과한 반면 전체 수출입의 22%를 차지하는 유럽지역 국가들 중 독일이 전체수입의 10%(유럽지역 수입의 45.9%)를 차지하고 있고 증가율도 30%를 넘는 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전지역 수출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입장에서 참으로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언론에 회자되는 한-EU FTA의 성과를 체감하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참으로 많은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 꼭 넘어야 할 산이 있는데 그냥 멈춰 서 버린다면 이는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유난히 한-EU FTA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유럽시장에서의 한국산 제품의 경쟁력 확대와 더불어 일본 제품이 유럽과 한국시장에서 동시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분석과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적어도 FTA 전략에서 우리나라에 한발 뒤처진 일본의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한일 기업 간 협력을 통한 FTA의 전략적 활용은 한-EU FTA의 불편한 진실을 해결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퇴직폭풍이 시작된 일본의 이른바 단카이 세대는 일본 생산인구의 10%를 점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년이후 적어도 65세까지는 계속취업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일본 기업의 투자 유치 및 적극적인 컨소시엄 구성은 비단 유럽시장에 대한 공동 진출 외에도 인적교류를 통한 자연스러운 기술이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대전지역 중소기업의 기술고도화는 결국 FTA 적용대상인 수입품목의 가격인하 유인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내수산업 수출화의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필요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 중소기업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보다 정책적 차원의 준비와 지원이 절실할 것이다. 이즈음 경제자유구역 하나 없는 대전의 현실이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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