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교수 |
지주를 제외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은 소작농들이었다. 자작농과 마름도 있었겠지만, 농경시대에 땅에 의지하여 사는 사람들 대다수는 소작농이었다. 지주에게 예속된 소작농들은 자신의 노동력으로 땅을 일구어 가을 추수가 끝나면 소출의 절반을 지주에게 갖다 바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괄시와 설움이 있었겠는가. 놀부와 옹고집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다. 소제방죽 전설에 등장하는 부자도 그런 인물이었다.
흔히 장자못 전설로 부르는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광포설화다. 특히 농사를 활발하게 짓는 황해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는 어느 고을을 가더라도 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메워져 동네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이 지역의 소제방죽 전설도 들과 거기서 삶을 꾸려가던 농투성이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다.
부자(富者)를 장자(長者)로 표현해놓고 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가진 자는 어른이어야 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품어야 하고 베풀어야 한다. 너그러워야 하고 이끌고 가야 한다. 경주 최 부잣집의 명성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그 집안이 주변 사람들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흉년이 들면 놀부는 희희낙락 고리대로 열을 올렸지만, 최 부자는 곳간을 열어 사방 100 리에 굶어 죽는 사람이 안 나오도록 했다. 그래서 장자인 것이다.
경주 최 부잣집 이외에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가로서 일세의 명성을 얻은 집안들의 내력을 살펴보면 방식이야 다르겠지만 각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사연들을 지니고 있다.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재물이 많아서도 아니고 집이 번듯해서도 아니고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서도 아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한결같은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책무를 강조한 말로서 처음에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특권을 향유하면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임무도 다하여야 한다. 이 당연한 명제가 로마제국의 2000 년 역사를 지탱하였고 유럽의 여러 나라로 계승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귀족계급이 사라진 현재는 부나 권력, 명예를 가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주변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기업인들의 훌륭한 사례들을 들을 수 있다. 미래산업을 일으킨 정문술 회장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정 회장은 자신이 결정한 조금은 이른 은퇴를 앞두고 돈 쓸 궁리를 시작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자 마음을 정한 것이다. 주변의 조언을 거친 정 회장은 어느 대학에 300억원을 기부하여 바이오테크 분야의 미래인력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탰다.
정 회장이 40대 중반에 처음 회사를 시작했을 때 초등학생 아들의 도덕 교과서를 보았다고 한다. 우연히 집어든 도덕 교과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이후 정 회장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가 시키는 대로만 회사를 운영하려고 애를 썼다. 주변에서는 그러한 스타일을 두고 '거꾸로 경영'이라고 빈정거렸다. 도덕 교과서에 있는 것들만 피하면 성공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정 회장은 철없는 사람, 엉뚱한 사람, 융통성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회사를 사원들에게 물려주고 자연인으로 돌아온 지금에 와서는 '거꾸로 경영'은 '아름다운 경영'으로 이름표를 바꿔 달았다.
워킹푸어와 청년실업, 그리고 대물림하는 극빈층의 행렬 속에서도 돈은 따로 있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지지부진한 저축은행 조사 및 전직 대통령이 터뜨린 대선자금 규모 등, 이제 그쪽으로는 아예 기대할 것이 없는 것 같고 자본주의를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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