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배 목원대 총장 |
왜 하필이면 4대 보험인가? 모든 대학에 골고루 사업을 맡길 수 없는 정부로서는 어떤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취업이 안 되는 때 취업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아주 매력적이고도 편리한 기준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취업의 기준을 4대 보험으로 한번 정해놓고 요지부동인 것은 너무 편의주의적이고 관료적이다.
대학을 취업률 하나로 평가하려 드는 것도 못마땅하지만 취업이나 창업을 했는데도 취업률에 포함될 수 없다니 억울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가 하면 어느 대학은 특성상 이미 취업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바람에 취업률 따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하니 불공평하다. 국가가 일자리를 창출한 성적을 공개하라면 아마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일자리만 포함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해서 모든 대학 졸업자가 취업할 수는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일각에선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을 문제 삼기도 한다. 너도 나도 대학에 가는 게 문제라는 식이다. 그러나 대학진학률을 탓할 수는 없다. 대학 졸업자가 가는 일자리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대학을 가고 안 가고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서 하면 되는 것이고 대학을 나왔어도 형편에 따라서 어떤 직업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저런 일자리도 없다는 것이 문제 아닌가?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대학에 돌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일자리가 충분한데도 취업할 능력이 없어 못한다면 모르되, 원대한 인생의 계획을 두고 암중모색 하는 사람들을 모두 미취업자로 분류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알만한 우리 대학을 나온 한 기업가는 크게 사업을 일으키려는 원대한 꿈을 품고 대학졸업 후 어느 주물공장에 취직했다. 가내 수공업이나 다를 바 없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익힌 주물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 것이 훗날 그의 회사를 크게 일으키는 데 기여했노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4대 보험과는 무관한 얘기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비싼 가격에 그의 그림이 팔린 우리 대학의 한 교수는 졸업 후 교수가 되기까지 직업도 없이 그의 화실에서 줄곧 그림만 그렸다. 인고의 세월을 버텼기 때문에 오늘날 그가 있게 된 것이다. 4대 보험이 적용되는 회사를 다녀가면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 대학을 나온 어느 소설가는 아직까지 한 번도 어디에 취직을 해본 적이 없다. 취직을 안 했으니 4대 보험이란 무엇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모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매년 한 편 정도의 주목할 만한 소설을 써내고 있으며, 그분을 한번 강사로 모셔 강연이라도 들을라치면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의 신입사원이 한 달을 일해도 받을까말까 한 강연료를 줘야 한다.
정부에서 대학의 취업률을 강조하다 보면 이제 모든 대학들이 취업에 유리한 학과 위주로 개편하려 들 것이다. 많은 대학이 그리로 몰려가다 보면 금세 그런 학과를 나온 학생들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고, 그 사이 대학에 학문은 없고 이 나라의 대학이 모두 취업준비생 양성소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문학, 역사, 철학은 물론 예술분야의 학과들이 없어지면서 예술가들도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취업에 유리한 학과들만 남고 다른 학과들이 사라진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취업이 어려울수록 대학은 기본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일자리는 경기가 좋아지면 자연히 증가하게 마련이지만 이미 사라진 대학의 학문적 기반은 쉽게 되찾을 수 없다. 급격한 인구감소에 따라 생산인구가 줄어들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앞으로는 일자리가 있고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창의성과 생산성이 몇 배로 높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취업에 유리한 실용적인 것만을 추구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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