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터가 흥미롭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가 다른 아이를 장독에 가두어 죽이면 죽은 아이가 혼령이 발휘하는 힘으로 아이를 갖게 된다는 민간 주술이 모티브다. 구전되는 이야기를 현재의 비극으로 재해석한 시도는 꽤 매력적이다.
주술이 필요했던 건 아들을 얻기 위해서였을 거다. 따라서 ‘머리 긴 여자 귀신’이 아니라 ‘초등학생 소년’이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는 설정도 색다르다. 이 ‘소년잔혹괴담’을 이끄는 이형석의 연기는 소름이 돋는다. 어린 나이지만 수줍음 많은 내성적인 소년에서 잔인하게 눈빛을 번뜩이는 귀기(鬼氣)를 넘나들며 극의 긴장을 이끌어간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을 만큼 피 튀기는 영상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기본적으로 공포영화란 장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주술을 소재로 한 ‘오컬트’인지 피 범벅 ‘슬래셔’인지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영화는 공포를 부르는 귀신이 누군지를 공개하고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를 뒤집는 극적 반전이 준비돼 있을 거라 내심 기대했지만 끝날 때까지 반전은 없었다.
공포영화로서 관객을 무섭게 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도 부족했다. 분위기를 차곡차곡 쌓아가기보다는 쿵쾅거리는 효과음에 의존한다. 전형적인 깜짝 공포다. 그것도 보고 또 봐왔던 장면들의 재현이어서 김이 샌다. 새로움도 없고 강약도, 리듬도 없는 쇼크 효과로 요즘 젊은 관객층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결정적으로 좋은 소재를 좋은 이야기로 꿰지 못한다. 단편적이고 충격적인 영상 조각들도 화면을 채우다 보니 여간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배경이 되는 스토리조차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무섭다고 다 공포영화가 아니다.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한다고 젊은 층이 관심을 갖는 것도 한계가 있다.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 내용물을 충실히 담아내는 기본이 중요하다. 공포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지만 한국 공포영화는 13년 전 ‘여고괴담’에서 뒷걸음칠 뿐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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