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광구는 제주도 남단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구역이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은 “제7광구에 석유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발표했다. 온 나라가 산유국의 꿈에 부풀었고, 국민의 염원을 실어 정난이의 노래 '제7광구'가 연일 전파를 탔다. 하지만 제7광구는 일본이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손을 들면서 흐지부지됐다. 영화 '7광구'는 이 제7광구가 무대다.
석유가 솟구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바다 밑 대륙붕을 들쑤시는 사이 상처 입은 바다는 기괴한 생명체를 품었다. 드디어 '놈'이 정체를 드러낸다. 돌연변이 괴물은 드문드문 사람을 공격하더니 급기야 시추선에 올라 '인간사냥'을 시작한다.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3D 블록버스터, '7광구'는 올 여름 최대 기대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연출했고,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이 제작을 맡아 김지훈의 스케일에 윤제균식 코미디가 어우러진 제2의 '해운대'를 보게 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컴퓨터그래픽(CG)과 3D 작업은 '해운대'로 할리우드 기술을 이전받은 모펙이 맡았다.
괴물과 여전사가 처절한 사투를 벌인다는 구도는 '에이리언'을 연상시킨다. 하지원이 연기하는 '여전사' 해준은 리플리로 치환된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괴물 또한 에이리언의 연장선에 있다. 빠르고 흉포하고 영악하다. 다른 의도로 해준의 싸움을 방해하는 악역의 비밀, 두꺼운 자동 철문으로 연결되고 단절되는 시추선의 공간도 '에이리언2'의 혹성 LA-426 기지를 닮았다.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화의 에너지가 폭발한다. 시추공을 쓰러뜨리고 문을 부수며 돌진하는 괴물의 폭주와 추격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사투는 눈을 떼기 힘들다. 모펙이 그려낸 괴물은 무시무시한 생김새에 운동감과 질감도 나름 생생하다. 아슬아슬 짜릿한 액션의 긴박감도 평균치 이상이다. 김지훈 감독은 결정적인 액션에 '트랜스포머'를 연상시키는 슬로 모션까지 가미해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심각한 상황에서 뜻밖의 웃음을 끌어내는 윤제균식 웃음코드도 활기를 띤다.
문제는 괴물이 등장하기 이전 과정이다. '해운대' 같은 재난영화나 '7광구' 같은 괴물영화에서 인물의 드라마는 서사를 끌어가는 동력이다. 누구의 죽음은 안타깝게 하고, 누구의 죽음은 통쾌하게 할 것이냐. 하지만 '7광구'는 인물들을 묶는 드라마가 얼기설기 헐겁다. 정서적 공감대가 없으니 대원들의 죽음은 감정이입 없이 그냥 소모된다. 박철민과 송새벽 콤비의 유머도 말장난에 머문다.
게다가 괴물이 왜 사람을 공격하는지도 알려주기 않는다. 에이리언처럼 숙주로 삼기 위해서인지, 먹잇감이기 때문인지 전혀 밝히지 않는다. '자연의 복수'라고 해도 '왜'에 대한 답이 있어야 몰입할 수 있는 거다.
윤제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철저한 상업·오락 영화다”라고 정의했다. '드라마가 부족하다'는 평가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하지만 볼거리가 풍성하다고 해서 탄탄한 서사를 무시해도 되는 건 아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3D와 CG, 액션으로 휘감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이야기가 부실해서다. 영화가 발휘하는 힘의 8할은 이야기다. 기술력과 볼거리, 액션은 그 다음이다. '7광구', 안타깝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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