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다함께 시조로부터 비롯되었다. 아! 한집에 모여 자리를 같이하고 한 그루의 밤나무같이 모두가 그의 친족으로서 수족과 같았다. 몇 대를 지나며 촌수가 멀어져 누가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형세의 흐름이다. 그러나 한 몸에서 갈라진 몸이 저 길을 가는 낯모를 사람과 같아질 것이니 식자로서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한국족보박물관 심민호 학예연구사가 족보박물관 소중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 |
기(記)또는 지(誌)는 시조, 중시조의 사전(史傳), 현조(顯祖)의 전기·묘지명·신도비명·제문·행장·언행록·연보·선조유사 등을 기록한다.
일찍이 고려 말, 가진 자의 사회적·도덕적 책무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회덕황씨의 선행은 '회덕황씨세보(1956년)'의 '회덕현미륵원남루기'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미륵원은 황윤보에 의해 지어진 원(院·여관)으로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했는데 그의 후손들까지 비영리로 운영했다. 미륵원은 또 여행자를 대상으로 구호활동 및 시설의 확장과 함께 사회봉사활동으로까지 확대된 대전지역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 미륵원 남루 |
조상의 순서에 따라 그 아래 나눠진 파를 망라해 적은 것을 세보 또는 지보(支譜)라고 하고 자기 직계만 적은 것을 가첩(家牒)또는 가승이라고 한다. 또 자기중심의 직계존속과 직계비속만을 기록한 것을 가승이라고 하고 한 파속(派屬)을 대상으로 한 것은 파보다. 이 파보를 2개 이상 합쳐 편찬한 것이 세보이며 계보는 한 가문의 혈통관계를 도표로 표시한 것이다.
대동보는 성씨의 시조로부터 모든 후손들을 기재한 것으로 워낙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수십 권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파보는 시조로부터 후대에 갈라져 나온 파시조(派始祖)를 중심으로 그 후손들을 기재해 대개 1, 2권으로 구성된다. 오늘날 집집마다 구비하고 있는 족보의 대부분은 파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간된 족보는 1423년 간행된 '문화류씨 영락보'로 알려져 있으나 그 서문만 전할 뿐 현전하는 최초의 족보는 '안동권씨 성화보'다. 성화보는 1476년 간행된 안동권씨 족보로 목판으로 찍어낸 3권의 책인데 중간본만 전해진다. 당시 중국 연호인 성화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 해서 성화보라 부르는데 아들은 물론 딸과 그 자녀(외손)들을 모두 싣고 있어 아버지 쪽 성씨 자손과 구별하지 않았다.
자녀는 출생순서로 기록하였으며 양자를 들인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성화보에 실린 안동권씨는 380여명으로 다른 성씨도 8000여명 실려 있다.
성화보는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성화보가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이성무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국가에서 고려 말 홍건적과 왜구 침입을 막은 사람들에게 관직을 남발함으로써 관직세계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기 가문이 양반으로서 배타적인 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족보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1565년 간행된 '문화류씨 가정보'는 총 11책 목판이다. 문화류씨 시조인 차달로부터 19대 자손, 사위, 손자까지 4만2000명의 인적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은 출생 순서대로 되어 있으며 사위를 여부(女夫)라 하지 않고 서(壻)라고 표시함으로써 남성우위시대였음을 보여준다.
한국족보박물관 심민호 학예연구사는 “가정보는 명나라 세종대의 연호인 가정년에 만들어졌다 해서 가정보라 부르며 19대 자손 4만여 명에 대한 인적사항을 기록함으로써 당시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 안동권씨 성화보<사진제공=규장작> |
여기에 대해 성봉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은 “동성을 상세히 한 것은 조상을 중요시 여긴 것이고 외손을 간략히 한 것은 근본을 높인 것(詳於同姓以重祖 略其外孫以尊宗)'이라 하여 외손을 일체 수록하지 않은 것은 조선전기 족보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라며 “안동김씨성보는 흔치 않은 보물급 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글=임연희·동영상=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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