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구 13·15대 국회의원, 계룡건설 명예회장 |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산비탈의 주택 또한 산사태와 좁은 배수로가 넘쳐 진흙폭탄을 맞았다. 한강북부와 영서지역 또한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을 원망하랴, 정부의 속수무책을 원망하랴.
이러한 물난리 속에서도 서울의 한강수위는 위험선을 넘지 않고 그 흐르는 물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다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 내가 배운 배수학(排水學)으로 풀어보면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번 물난리는 올 것이 온 것이고 당할 것을 당한 것으로 풀이한다.
비가 오는 강도를 측정하는데 2가지 기준이 있다. 그중 하나는 강수량의 강도로 3~5일간 계속 내린 비의 강우량이고 이것을 4대강 정도의 큰강에 대한 홍수대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미국의 미시시피강, 중국의 양쯔강, 일본의 스미다강 대범람의 대참사가 근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다.
배수학(세계공통)에서는 세계강우량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하천 계획을 세우는 표준을 50년 빈도로 하고 있다. 만약 50년 빈도 이상의 큰비가 오면 범람을 막을 수 없다. 이런 경우는 인위적인 수방대책을 세워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미시시피강의 범람을 예방하기 위하여 강줄기를 인위적으로 타지역으로 돌려 버리는 방법이다. 이의 실행을 결심할 권한은 미국의 경우 대통령과 관련 주지사다.
중국의 양쯔강 범람을 막기 위하여 범람위험제방에 수십만 군인을 동원하여 인간방호벽을 쌓아 극복한 예가 있다. 배수학에는 세계 각국의 50년 빈도 강우량을 책정한 표가 있다. 한국의 50년 빈도 강우량은 10인치(250㎜)로 되어있다. 이번에 내린 비는 평균 500㎜가 넘고 지역에 따라서는 760㎜가 넘었는데도 한강이 온전했던 것은 한강수계에 있는 9개의 홍수조절댐(발전댐 포함) 덕택으로 봐야한다. 또한 한강 하구에서 한강물을 바다에서 막는 만조현상이 없었던 것도 천우신조라 생각한다.
배수학에서는 강우량 표준 외에 강우강도(强雨强度)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강우량은 적지만 시간당 얼마나 세게 폭우가 내리느냐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큰강이 아닌 지천(支川), 세천(細川)이나 저지대의 배수, 도로주택가의 배수, 산사태 등을 예방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또한 20년빈도의 강우강도를 도시계획의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의 20년빈도 강우강도는 2인치(50㎜)로 되어있다. 이번에 내린비의 시간당 강우량은 100㎜가 넘어 설계기준의 2배의 강우강도로 내렸는데 속수무책일수 밖에 도리 없지 않은가?
언론에서는 이번 비를 교훈삼아 100년 빈도에도 끄떡없는 치산 치수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은 쉽지만 실행은 요원한 것으로 본다. 선진국에서도 포기한 기준이다.
첫째, 천문학적 예산이 들고 둘째, 현존 도시계획이나 국토계획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만 가능하다. 차라리 20~50년에 한 번씩 시련을 감수하고 재난구조를 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된 선진국에서는 재난보험을 발전시켜 전 국민이 스스로 재난을 극복하는 제도를 택하고 있는 풍조다.
이번 폭우로 인한 최대 피해는 산사태 폭탄으로 유발되었다. 한국은 국토의 65%가 산지로 되어 있어서 그 우려는 타국에 비하여 더 걱정이 된다. 미국은 거의 평탄지역에 나무숲이 펼쳐져 있다. 따라서 미국산림정책은 조림, 육림, 목재생산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산불방지에 특수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지형을 지닌 일본의 산림정책은 미국과 조금 다르다. 조림, 육림, 벌채제도는 미국과 흡사하지만 산사태 방지에 삼림청(森林廳)의 특별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산은 한국보다 가파른 구배를 형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의 토심(土深)이 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산사태는 수백t, 수천t의 흙이 할퀴고 내려 붓는 정도라면 일본의 산사태(야마쿠즈레)는 수백만t의 흙폭탄이 쏟아져 펼쳐온다. 일개 면소재지나 군소재지가 온통 재난지역으로 변하고 수백명의 사망자가 생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시스템이 중앙정부, 지방정부, 지방자치단체별로 유기적인 대책 마련이 되고 있고 위험지역에서는 년중 대피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대규모 산사태 위험지역은 국가, 중규모 위험지역은 지방정부, 소규모 위험지역은 자치단체별로 지정하여 관리 대비하고 있다. 대규모나 중규모 위험지역은 평시에 요소요소에 붕괴위험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과학실험기를 파묻어 놓고 강우량과 강우강도를 측정하며 그 토질의 변화(함수량, 흙의 유체화, 흙에 미치는 압력 등)를 모니터링하고 재빨리 경계경고와 대피를 시키고 있다.
며칠 전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우리 산림청 산하 연구원(박사)과 TV대담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나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번 산사태는 “산림청에서 책임지고 예방할 입장에 있지 않다. 오로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산림청에서는 예방지침을 지방에 보내주며 감독할 책임도 능력도 없다”는 식의 말로 일관했다. 우면산 산사태도 “며칠 전에 서초동 실무책임자 몇 명에게 위험성을 개인서신 형식으로 이메일로 보냈는데 우이독경으로 대한 결과다”라고 면피성 발언만 하고 있다.
이메일을 받은 공무원은 이미 퇴직한 전직간부라는데 또 이들은 그 이메일을 사고가 난 후에도 받아보지 못했다는데…. 이런 무책임한 관청이 산림청인가? 나는 실소했다. 적어도 그런 자리에 있는 박사라면 이웃나라가 산사태를 어떻게 예방하고 만약에 발생 했을 때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의무가 있지 않을까? 잘 알고 있으면서 이번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모르는 척 했다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상현상의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기존의 20년빈도 강우강도나 50년빈도 강우량의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끼리(국내)만이 아니라 국제학회에서의 기준을 개발할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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