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비는 그저 내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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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비는 그저 내릴 뿐이다

[목요세평]김영호 배재대 총장

  • 승인 2011-08-03 14:09
  • 신문게재 2011-08-04 20면
  • 김영호 배재대 총장김영호 배재대 총장
▲ 김영호 배재대 총장
▲ 김영호 배재대 총장
100년만의 폭우라 했다. 하지만 작년에도, 재작년에 내린 비도 100년만의 물폭탄이라고 하였다. 온갖 매체들은 '100'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내세우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물난리를 단순히 자연재해에 무게를 두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말에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힌 이 끔찍한 재해는 인재(人災)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전파된 폭우로 인한 안타까운 영상이, 산사태로 인해 토사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자극적인 영상이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재해가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나에게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만물을 끌어안으며 삶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물이 성난 야수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왜일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의문이 머리를 맴돌다,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구절이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는 이 구절은 현재의 상황에 역설적이게도, 정확히 들어맞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여기에서 '물처럼 되는 것'의 의미는 물이 가진, 다투지 않고 온갖 것을 섬기는 자세(水善利萬物而不爭)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는 자세(處衆人之所惡)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가 궁극의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도(道)에 다다르는 하나의 길이 된다. 하지만 근래 사람들의 삶의 자세나 나라의 정책들 대부분이 본연의 물의 흐름을 닮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다른 존재들과 끊임없이 다투고, 매끄럽게 개발되지 않은 곳에는 발길조차 들이려 하지 않는다.

서울시가 올해 수해방지 예산을 작년의 1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느니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지금의 세상이 보편적 삶의 방식과 가치에 크게 어긋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개발보다는 인간 편리 위주의 빠르고 효율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것들은 하루 빨리 고쳐지거나 아니면 사라져야 할 것들이 되었고 그 자리엔 디지털식 최첨단의 이기(利器)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도시의 모든 것들은 나이 먹을 권리를 잃고 그만큼 깊어질 기회를 박탈당했다.

첨단의 건물들, 그리고 잘 구획 정리된 인공적인 공원이 당장의 눈에 아름다울지는 모르지만 사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건물들의 자연적인 견고함에는 따라가지 못한다. 실제로 우리의 옛 건물들과 자연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공간들 중에 많은 것들이 국내외에서 그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널리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오래되어 모서리가 다 깎여나간 건물에는 물의 흐름이 새겨져있다. 다투지 않고 낮은 곳을 향하는 시선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시대의 날카로운 첨단(cutting edge)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다시 비가 내린다. 피해를 입은 지역에서는 군인, 공무원 등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비는 그들의 등 위로 머리 위로 그저 내릴 뿐이다. 어떤 목적도 의도도 없다. 그 자연의 흐름이 독이 되고 되지 않고는 모두 그를 활용하는 인간의 마음에 달린 일이다. 이번의 재해가 왜 발생하였는가의 해답은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생각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편안함과 첨단에 대한 열망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재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곳이 있다면 분명히 비가 내리지 않아 바싹바싹 말라가는 곳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람의 잘못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실상 많은 재해들이 인간 편의 위주의 과학기술이나 문명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00년만의 폭우, 폭설, 가뭄이라는 기록적인 용어는 아마도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100년만의 재해들을 우리가 가진 지혜로 막아내야 한다. 이제껏 지향했던 삶의 편의주의적인 방식을 지양하고 자연과 공존하려는 가치관을 확립할 때, 이상기후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지금의 재해들은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첨단의 시대에 이런 아날로그적인 이야기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도덕경』의 작은 구절이 지금의 사회가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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