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용기(커리지)도 '더치 커리지'는 속된 말로 '깽판' 가까운 객기다. 잔소리꾼 아저씨는 '더치 엉클'이 된다. 객보다 주인이 먼저 곤드레만드레 취하면 '더치 피스트'다. 음정 박자 무시한 노래 부르기를 '더치 콘서트'라 한다. '내가 네덜란드 사람이다'는 우리의 '성을 갈겠다'쯤 되는 험한 말이다. 얼마 전 무릎을 치게 한 발견이 있었는데, 바로 '더치 와이프'였다. 이 변변치 못한 '네덜란드 아내'는 밤에 땀 식히려고 엮은 바구니(대나무) 아내다. 아니, 죽부인이 언제적부터 네덜란드 출신이었나.
이래봬도 가을 곡식 팔아 애첩을 사고 다시 여름에 애첩 팔아 부처를 샀다던 조상님다운 발명품이지. 하지만 잘못 넘겨짚었다. 우리 것도 네덜란드 것도 아닌 중국 것이었다. 혹시, '아리랑'을 자기네 국가급 비물질(무형) 문화유산으로 우기는 중국 특유의 역사인식인가 했다가 당대에 죽협슬(竹夾膝), 송대에 죽노(竹奴)와 죽희(竹姬)라 적은 기록을 보고 포기했다. 그 때문은 아니지만 대나무 첩과 신나는 환상을 꿈꾼 건 아주 잠시였다.
아직은 바람각시 도우미를 들일 나이가 아닌데다 공자님 자세로 잠자는 체위(?)와 안 맞고, 또 이걸 끌어안고 자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저 물건을 떠나보내는 여러 구실엔 '스마트 워킹을 위한 마인드 프로세싱' 중이라는 상당히 모양 나는 핑계도 있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물건을 보내는 이유 끄트머리엔 마음의 방 4개도 들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첫 번째 방이 지금 함께 사는 여자의 방이다. 두 번째 방은 첫사랑, 세 번째 방은 이상형의 방, 네 번째 방은 미지의 운명적인 여자의 방. 첫째 방이 제일 큰 남자는 현명하다. 둘째가 크면 비전 없고, 셋째가 크면 어리석다. 넷째 방이 크면 바람둥이일 개연성이 크다.
이 넷은 자신 못해도 마음방 어디에도 죽부인이 자리할 공간은 없음을 알았다. 생활이 원체 죽향에 홀려 푹 빠져 지낼 만큼 탈일상이 아닐뿐더러 무력함의 병증처럼 보일 안락에 취하도록 주위에서 내버려두지 않는다. 게다가 차가운 애인 '죽부인'을 놓고 '마이 올드 더치'(속어 '우리 마누라')가 용처를 재우쳐 묻는다. 당연한 듯 “싫다”고 해야 정답이다. “질투 모르는 애인 필요 없어”라고 단호하게 '확인 사살'까지 곁들였다.
댓바람에 죽부인과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기로 한다. 선물한 이에게 미안하고 첫날밤도 못 치른 죽부인이 안됐어도 정들기 전 절연하는 게 도리지 싶다. 그나마 작은 진리 하나는 건졌다. 사랑은 움직임이라고, 미치게 더워도 그를(그녀를) 위해 몸 움직이는 실천이라고. 우기기는 아니라고…. 반드시 대의가 명분이냐. 장엄해야만 꼭 위대하냐. 휘적휘적 복중더위를 헤쳐 가며 살아 있음이 그럭저럭 아름다운 여름날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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