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와 조각의 절묘한 만남으로 빚어지는 '전각(篆刻)'.
글자를 조형화해 돌이나 나무, 옥에 새기는 종합예술로 글자와 그림의 배치, 격조 있는 색감 등에서 진한 예술성이 우러난다.
특히 작은 공간에 칼의 움직임이 낳은 변화무쌍한 파각과 화려한 문양은 '방촌(方寸)에 새긴 우주'임을 잘 말해준다.
이처럼 방촌(方寸)의 예술로 불리는 전각(篆刻)과 현대 서예가 만나는 특별한 전시회가 대전에서 열린다.
4일부터 10일까지 대전 모리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연경학인'전이 바로 그것.
▲ 이완 作 '수진비각' |
매년 다른 주제로 주제를 갖고 서울을 시작으로 북경, 광주, 부산 등에서 전시를 이어오는 이들은 이번 대전 전시에서 '현을 새기다'라는 주제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조강원, 최재석, 신현경 등 모두 14명의 작가가 참여해 아름다운 전각작품들을 선보인다.
전각이라는 장르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 이름마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전각은 예전 우리 선조 시절부터 있었던 개인을 대변하는 실용적인 것뿐 아니라 작은 면에서 나오는 구도의 모습은 서양미술과는 또 다른 추상미의 극치이자 동양예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전각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돌, 나무 등에 문자나 도안을 새겨 넣는 것을 말한다.
'새기다'는 전각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이번 전시의 컨셉트라 할 수 있다.
▲ 윤영석 作 '無소유' |
문자 조형과 돌과 칼이 만났을 때 표현될 수 있는 전각만의 순수한 미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최재석 작가는 정약용의 '불역쾌재행(유쾌하지 아니한가)'시를 차용해 불역쾌재행을 인재에 새긴 후 행초서의 리드미컬한 유창함을 표현했다.
칼과 붓, 인재와 화선지의 질감에 따른 선의 변주, 하얀 화선지, 검은 먹의 농담 변화에 따라 표현의 극대화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신현경 작가는 자그마한 입체작품인 전각과 중국전통회화의 공필화의 기법을 융합한 작품으로 고대에서 볼 수 있는 수법을 차용해 현대적 미감에 맞게 재창조한 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공간 안에서 파여진 글씨, 그 틀 속에서 잘 맞도록 조정되고 배치하고 있고 또 작품 안에서 한층 공간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전각은 시·서·화를 한층 깊이 있게 해주고 있으며 또한 그 역할도 기술적 예술로서 높게 평가된다.
▲ 배지은 作 '나는뭐야' |
보이는 형식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성을 강조한 이번 작품들은 화려하고 거대한 것에서 한 발짝 물러난 듯하며, 하나의 삶을 나타낸다.
보여주기 위해 만든 아름다움이 아니라 작품들은 삶 속에서 닦여진 풋풋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예술로 치부된 감이 있는 서예, 전각을 선보이며 전통의 심오함을 가슴에 품고 현재와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또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예술에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해 새로운 미감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박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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