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효문화마을 이관 ‘NO’
사업 면밀 검토해 혈세 써야
▲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
그동안 엑스포남문광장은 자전거와 인라인을 처음 배우는 아이들의 연습장이었다. 유모차를 밀고 산책 나온 주부는 물론이고 대여섯 살 꼬마들도 광장을 누비며 자전거와 인라인을 탔다. 꼬리를 물고 달리인 인라인 동호회원들의 갖가지 묘기는 큰 볼거리였다. 대형 그늘막과 LED 전광판 없이도 즐거운 광장이었다.
가로·세로 45m, 높이 21m의 무빙쉘터는 우천 시에도 공연과 레저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이것 때문에 더 이상 광장을 거침없이 달릴 수 없게 됐다. 엑스포광장에 무빙쉘터와 야외공연장, 대형 전광판이 꼭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이미 엑스포과학공원, 문화예술의전당, 시립미술관, 평송청소년문화센터, 한밭수목원 등 풍부한 문화공연시설이 있는데 말이다. 웅장한 광장 시설물은 한밭수목원과 갑천으로 이어지는 대전 도시 숲의 녹색 허파를 인공조형물로 쪼개놓은 느낌이다.
소박했지만 과거 대전엑스포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남문광장을 바꾸는데 200억원을 거침없이 쓴 대전시는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치구 시설물들을 이관 운영하는 데는 인색하다. 동구의 대전문학관 이관을 시의회가 제동 걸더니 중구 효문화마을을 포함한 뿌리공원 일대를 매입 운영하는데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34억여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준공한 대전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번듯한 건물을 지어놓고도 1년 가까이 문도 못 연채 놀리고 있다. 문학관 내부를 들어가 보면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세미나실, 사랑방(열람실)이 마련돼 있고 수장고에는 지역 문인과 주민들이 기증한 9980점의 자료가 잠자고 있다.
문학관의 연간 운영비는 5억원 정도다. 시의회는 문학관을 매입할 경우 시의 재정 부담이 가중될 뿐만 아니라 다른 자치구와의 형평성에도 어긋나며 운영비가 많이 드는 시설물을 줄줄이 이관 요구할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자치구가 이관해 달라는 시설물을 넙죽넙죽 받으려면 시 담당공무원은 왜 있고 시의원은 왜 필요한가? 각각의 사안에 따라 면밀히 분석해 꼭 필요한 시설물은 이관하는 게 바람직하다.
중구 안영동과 침산동 일대 효문화마을과 뿌리공원, 한국족보박물관을 매입 운영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대전시는 두 차례 중구가 주최했던 효문화뿌리축제는 벌써 가져갔다. 전국유일의 뿌리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우수축제로 선정돼 올해부터 3년간 1억5000만원의 지원을 받는데다 행사장인 뿌리공원에 족보박물관까지 있어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시 예산이 4억5000만원 들어가지만 대전을 대표할 변변한 축제가 없는데다 축제기간 수십만 명이 모이니 시가 마다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축제기간까지 이틀에서 3일로 늘려 잡았다. 내년 10월에 하겠다는 국제푸드&와인페스티벌 예산도 12억원이다. 최소 염홍철 시장 임기 중에는 계속될 와인페스티벌 예산이 매년 12억원이면 결코 적지 않다.
대전문학관의 연간 운영비는 5억원이며 노인휴양시설인 효문화마을에는 연간 8억원이 소요된다. 136개 성씨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뿌리공원의 연간 운영비는 6억원,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박물관은 3억원이다. 수십만 명이 운집하는 뿌리축제는 선뜻 가져가고 12억원짜리 와인페스티벌도 하겠다는 시가 다른 시설물의 이관에 시큰둥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치구가 무리하게 벌여놓고 뒷감당을 못하자 이관을 요구하는 모든 사업을 시가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엑스포광장도 200억원을 들여 재창조(?)하고 며칠 축제에 수억에서 수십억원씩 쓰겠다는 시가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 등 연간 운영비 5억원이 안드는 시설물 운영에 소극적인 것은 이해가 안간다.
시는 열악한 재정과 자치구간 형평성만 운운하지 말고 각 사안별로 꼼꼼히 따지고 고민해 문제가 되는 시설물들을 직접 관리하든 다른 기관단체에 위탁하든 묘안을 내놓아야할 것이다. 이것이 시민 혈세를 제대로 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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