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애니메이션의 약진이 눈부시다. “그림은 좋은데 줄거리가 좀…”하는 선입견을 가뿐히 넘어선다. 짧게는 5년, 10년을 곰삭힌 이야기는 맛깔스럽다. 재미도 있다. '소중한 날의 꿈'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보였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성취의 지점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한 엄마 관객은 “애들 보여주러 왔다가 내가 울고 가네”라고 했다. 엄마가 우니 아이들은 덩달아 운다. 부모세대와 어린세대가 지점은 달라도 나란히 감동하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애니.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취다.
'마당을…'은 양계장에 갇혀 알을 낳던 암탉 '잎싹'이 동경하던 마당으로 진출하는 모험담이자 '생태도 다르고 종도 다른' 암탉 품에서 자란 청둥오리 '초록'의 특별한 성장담이다. 어른들은 잎싹의 자유의지와 모성애에 감동한다. 아이들은 초록의 영웅적 모습에 환호한다.
러닝타임 94분에 고도로 농축된 이야기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사건과 액션이 꼬리를 물며 쉴 새 없이 몰아친다. 특히 초록이 파수꾼이 되기 위해 다른 청둥오리들과 시합을 벌이는 긴박감 넘치는 비행 시퀀스는 한국 영화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다.
잎싹은 문소리, 초록은 유승호, 초록의 아빠인 청둥오리 나그네는 최민식의 목소리다. 단연 돋보이는 건 숲속 공인중개사 수달 달수다. 달수의 목소리를 맡은 박철민은 “누가 나의 지식을 쪼까(조금) 훔쳐갔으면 좋겠네” 등 전라도 사투리로 익살을 떨면서 찰진 웃음으로 영화의 긴장을 풀어준다.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미국의 디즈니/픽사나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보다 낫다. 한국애니는 2002년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성공 가능성에 들떴었다. 하지만 그뿐. 관객들의 외면에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 한국애니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 이번만큼은 관객들이 한국애니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당을…'은 오는 10월 열리는 시체스 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됐다. 중국에서도 개봉된다. 세계가 한국애니를 주목하고 있는 지금이다.
'마당을…'이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해서 “아이들이 좋아할까”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때론 비극이 아이들을 성장시킨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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