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리되지 않은 나무와 풀로 무성한 김태원 선생의 생가터. |
1900년에 태어난 김태원 선생은 23세에 '벽창의용단'을 조직해 군자금 모금과 일본경찰 및 밀정의 사살 등 항일운동을 하다 27세에 체포되어 사형을 언도받았으나 탈옥해 중국 상해임시정부의 일원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대전시문화재자료 41호로 지정된 이 생가 터는 대전시 동구 홍도동 133-10 옛신탄진로 71-14에 위치해 있으나 인근 주민들조차 잘 모르고 있다.
홍도동 주민 10여 명을 만나 생가 터 위치를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김태원 선생 생가 터는 방치 그 자체라 할 만큼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는데 입구엔 안내입간판 하나만 서 있을 뿐 출입문은 자전거용 자물쇠로 꼭꼭 채워져 있고 우편함에는 빈 깡통과 쓰레기가 채워져 있었다.
생가 터로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오히려 골칫덩어리가 됐다는 한 마을주민은 “오래된 집에서는 지붕에서 비가 줄줄 새지만 고치기도 어렵고 문화재보존 때문에 동네 개발도 불가능하다”며 “관계기관이 애초 약속한대로 생가주변을 공원으로 지정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동구청 관계자는 “김태원 선생 생가 유허지는 전적으로 구청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닌 사유지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 관리하는 것이 옳다”며 “하지만 구청에서도 1주일에 한번 꼴로 전지나 낙엽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생가유허지로 인해 민원이 들어온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공원 이야기 또한 처음 듣는다”고 밝혔다.
/이하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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