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희창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운영위원장 |
직업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문직의 특성을 여러 가지로 논의하고 있으나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전문화된 지식과 기술, 사회에 대한 봉사, 자율성, 그리고 철학적 사고 및 윤리를 꼽는다. 특히 전문직에는 윤리성이 강조돼 고도의 직업윤리와 실천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전문화된 지식이나 기술을 갖고 그에 상응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전문직이라 말하지 않는다. 직업윤리가 없으면 더 이상 전문직일 수 없다.
그래서 교육은 뒷전인 채 촌지를 밝히는 교사는 더 이상 미래 세대를 책임지는 교육자일 수 없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첫째로 여기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환자를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는 의사는 결코 인술을 펴는 의사가 아니다. 그냥 째고 꿰맬 줄 아는 기술자일 뿐이다.
억울한 사람들에게 법률적 조언을 주고 정의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사건의 수임을 위해 커미션을 주는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교수든, 세무사든, 회계사든, 그 어떤 직종에 있는 사람이건 직업윤리로 무장되지 않은 사람은 전문직에서 제외된다. 하물며 사회의 목탁이자 공기라 할 수 있는 언론인, 특히 기자들에게 직업윤리는 말해 무엇하랴.
최근 언론계에서는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두 사건이 주목을 끌고 있다. 하나는 세계적인 언론 재벌 머독이 소유한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특종을 하기 위해 취재원들에 대해 도청(盜聽)을 한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 기자가 야당인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 내용을 도청해 여당에 넘겨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이 두 사건 모두 불법적인 도청이 핵심 사안이다. 그러나 이후 전개된 양상은 전혀 다르다. 영국에서는 불법 도청 사실이 알려지면서 1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신문이 스스로 폐간을 결정했다. 수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하고 심지어는 사주인 머독이 의회 청문회장에까지 불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들의 분노는 식지 않은 모양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KBS의 대응은 참으로 치졸하기까지 하다. 의혹이 제기되자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발뺌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찰의 정당한 압수수색에 '언론탄압'이라고 큰 소리친다. 경찰이 도청장비로 의심되는 기자의 휴대폰과 노트북을 압수했으나 이미 새 것으로 교체한 뒤였다. 해당기자가 휴대폰과 노트북을 잃어버려 교체했다는 것이 변명의 사유인데, 그야말로 '눈감고 아웅'하는 격이다.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특종을 하기 위한 무리한 욕심에서 도청이라는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아무리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취재과정에서의 부도덕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그들은 과감하게 신문사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개인소유의 언론이 부도덕한 취재윤리 위반으로 문까지 닫았지만 대한민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는 오리발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의혹은 의혹일 뿐이다. KBS가 떳떳하다면 이전에 사용하던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하루빨리 공개하는 등 경찰의 수사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신료 인상을 위해 불법도 스스럼없이 저지른 언론으로서의 오명은 길이길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관련 언론인들은 스스로 기자로서의 전문직이길 포기한 것이 되며 나아가 권력에 동원된 한낱 '주구'임을 자처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올해로 지방자치 20주년을 맞았다. 각 분야에서 지난 20년간 어떤 변화들이 있어왔는가를 짚어보는 각종 기획들이 쏟아져 나온다. 차제에 언론계도 지난 20년간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점검해보면 좋겠다. 20년 전 지방자치가 실시될 무렵 우리 언론은, 언론인들은, 기자들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20년이 지난 바로 지금 우리 언론은, 언론인들은, 기자들은 어떠한가? 철저한 직업윤리로 무장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고, 약자를 옹호하며 권력을 비판하는 데 앞장서 왔는가? 그래서 전문직으로서의 그 사명을 다해왔는가? 스스로 한 번쯤은 되물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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