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라가의 피카소 미술관 근처에 있는 로마시대 성벽. |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학창시절 세계사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대목이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헛된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에 많은 곳을 돌아보려는 일행들의 욕심으로 현지에서 버스투어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고속도로나 또는 일반도로를 달릴 때면 가이드는 곧잘 “지금 달리는 이 도로는 로마시대에 닦은 길입니다”라고 설명해주곤 했다.
가이드의 이 말을 들으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로마시대면 시간적으로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치면 무려 2000년 이상을 더 소급해 올라간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스페인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이미 기원전부터 로마인들은 넓은 도로망을 건설해 그들의 야망을 충족시켰던 것이다.
'팍스 로마나'.
지중해를 장악함으로써 로마는 당시 세계최강의 제국을 건설했고 그 대열에서 스페인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강혁 교사(대전외국어고·스페인어)에 따르면 로마제국이 이베리아반도에 상륙해 완전히 정복할 때까지 무려 200년이 걸렸다고 한다.
▲ 스페인에는 로마시대 도로와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
그 유명한 아우구스투스황제가 직접 스페인에 와 게릴라전에 맞선 전법을 구사해 결국 이베리아반도를 로마의 수중에 넣었다고 역사에 기록돼 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스페인에는 로마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있었다.
우선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드넓은 도로는 정말 그 시대에 축조된 것인지 의심이 들만큼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로마는 그리스에 비해 예술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로마시대 조각품들은 하나같이 미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1500년도 더 되는 세월속에서도 조각품 하나하나가 기품이 살아있는 정교한 예술작품이라는 점에 필자는 일순 기가 죽고 말았다.
저 작품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온전한 상태로 보관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하니 스페인 사람들뿐 아니라, 로마이후 스페인에 살았던 서고트족을 비롯한 아랍인과 무어인들 또한 문화예술을 존중하고 이를 후대에까지 전해주려는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다.
로마시대의 길과 조각품뿐 아니라 로마유적은 가는 곳마다 있었다.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의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톨레도에는 로마시대 것으로 보이는 성(城)이 있는데 이 성은 로마시대 '톨레둠'에서 유래됐고 원주민들은 '톨레'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로부터 '톨레도'라는 이 도시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톨레도 구 시가지 모습. 로마유적이 곳곳에 있다. |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가 태어난 말라가에는 2003년에 개관한 피카소미술관이 있다.
피카소의 첫 번째 아내인 올가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파울로의 미망인과 피카소의 손자가 기증한 작품 200여점을 전시하는 미술관인데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피카소미술관을 조금 벗어나 시가지 쪽으로 가다보면 로마시대의 성채가 남아있었다.
이곳 말라가는 기원전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했으며 그 후 로마와 아랍인들이 차례로 지배했던 해안 도시로 로마극장유적을 비롯한 로마요새에 건설한 이슬람시대의 요새 '알카사바' 등 역사적 유적이 즐비하다.
로마시대의 유적과 이슬람, 가톨릭으로 이어지는 스페인의 역사유적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그 유적을 건설한 고대인의 뛰어난 축조기술에 감탄하는 한편 시간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시오노 나나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로마는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1000개 이상의 국가를 통합한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그 강성했던 로마도 게르만민족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고 그들의 견고한 건축물들만 당시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시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영고성쇠라는 인간사회가 겪을 수 밖에 없는 길을 대부분의 문명과 국가가 걸어왔다는 사실 앞에 그저 숙연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아울러 인간의 욕망과 영화는 어쩌면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면 그저 일순간의 짧은 시간이라는 허무감도 밀려왔다.
여기서 다시 스페인에서의 로마지배역사를 되돌아보자.
로마의 스페인통치는 길게 700년 짧게 보면 500년 이상 지속되면서 이베리아 반도를 이스파니아주라고 부르면서 이 이름이 오늘날 스페인나라 이름인 '에스파냐'의 기원이 되었다.
그만큼 로마는 스페인의 국가기틀을 형성하는데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정치, 사회, 문화예술 및 종교, 사상에 이르기까지 로마는 스페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제국에 의해 장악된 이베리아반도는 완전히 로마화되었고, 이들 이베리아인들은 로마제국에 충성했다.(이강혁 책에서)
도시건설은 물론 토지사유제와 노예제도도입, 화폐경제의 발달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로마의 영향이 스페인을 잠식했다.
스페인은 로마제국의 일원이 됨으로써 유럽에 편입될 수 있었다는 게 역사가들의 평가다.
스페인이 오늘날과 같은 가톨릭국가가 된 것도 예수의 제자이며 스페인의 수호 성자인 사도 산티아고(Santiago, 야고보)의 전교에 따른 것이며 로마의 라틴어를 통해 스페인 언어가 정립될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황제 중 이베리아반도출신으로 저 유명한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4명의 황제가 나왔고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기원전 55년~서기39년)부자도 이베리아반도출신이다.
대표적 이슬람유적인 코르도바 출신인 아들 세네카는 악명 높은 네로황제의 스승이기도 했다.
금욕주의를 주창한 것으로 알려진 아들 세네카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스토아학파 철인(哲人)답게 평정한 가운데 자결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시간의 위력과 인간사의 허무감속에 빠지기도 했지만, 로마는 과연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로마유적은 필자일행에게 무언의 교훈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로마의 강성한 제국건설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했지만, 부패와 도덕적 타락은 아무리 강성한 제국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냉엄한 진실이기도 했다./글=조성남·사진=황길연 중구문화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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