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성룡초 교감 |
2000년 3월부터 2년 6개월간 대전시교육청 교육정책담당관실(현 학교정책담당관실)의 파견교사로 있었다. 매달 발간되는 소식지 '대전교육' 편집 외에 교육과정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어설펐지만 중등교육과 김덕주 장학사님(현 대전시교육청 교육국장)과 김동문 장학사님(현 대전전민고 교장)은 마주칠 때마다 “잘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필자를 담당했던 이기자 장학사님(현 대전교육정보원 운영부장)은 교육과정 업무를 처리하려면 교육과정 해설서 5권을 독파해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엔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 2회 정도 반복해서 읽고 나니 어렴풋이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意自見)이란 말이 실감났다. 2년 후 교육전문직 시험 합격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후임으로 동부교육지원청에서 오신 이성구 장학사님(현 대전관저초 교장)은 형님처럼 자애로우셨다.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거나 실수했을 때 장학사님의 성품은 더욱 빛났다. 필자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항상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를 선택해 말씀하셨다. 언제나 장학사님처럼 처신하리라 다짐하지만, 인격수양이 부족한 탓에 따라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정책담당관실의 김창규 담당관님(현 대전시의회 교육의원)은 '선사후공(先私後公)을 강조하셨다. 개인의 문제가 해결될 때 나랏일도 잘 할 수 있다며 직원의 어려움을 하나하나 헤아려 주셨다. 아랫사람들의 장점을 찾아 북돋아 주셨다. 혹여 다른 사람이 우리 직원의 흠이라도 잡을라치면 모든 게 당신 탓이라며 적극 감싸 안으셨다. 담당관님의 '선사후공'은 필자의 좌표가 되었다.
2002년 9월, 41살 되던 해에 대전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로 발령받았다. 국책사업인 대전교수학습지원센터 구축 업무를 맡았는데, 우리나라 정보 분야의 대가였던 정보과학기술과(현 미래인재육성과) 이규선 장학사님(현 대전관평중 교장)의 도움이 컸다. 정보에 문외한인 필자가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셨다. 덕분에 대전교수학습지원센터가 전국의 표본사이트로 선정될 수 있었다.
대전시교육청 정보과학기술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김근수 장학사님(현 대전정보기술학교 교장)도 잊을 수 없다. 10명의 교육전문직 중에서 초등 출신은 혼자였기에 외로웠는데 언제나 함께하셨다. 초등교육과 이용현 장학사님(현 대전은어송초 교장)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며, 자리를 보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항상 뒤돌아보라고 조언하셨다.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하셨다.
초등교육과 하헌선 장학사님(현 대전동산초 교감)과 대전두리초등학교 장한용 교감 선생님은 도울 일이 없냐며 항상 관심을 표명해 주셨다. 중등교육과 김원중 장학사님(현 대전장대중 교장)은 독서와 신문 분야, 정보과학기술과 맹동술 장학사님(현 한밭고등학교 교감)은 과학 분야에 대한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기회를 자주 제공해 주셨다.
사실 남에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조언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심은 친구를 만들지만, 진심은 적을 만든다'는 프랑스 속담처럼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기탄없이 조언해 주신 선배 장학사님들이 계셨기에, 교육전문직 시절을 되돌아볼 때마다 행복한 웃음을 머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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