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정경' 기교없는 향기 물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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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정경' 기교없는 향기 물씬

최근 유화작품 42점 선봬… 질곡의 시대 동행한 서정적 추상의 진수

  • 승인 2011-07-05 14:12
  • 신문게재 2011-07-06 11면
  • 박수영 기자박수영 기자
●제8회 이동훈 미술상 이종학초대展… 8일부터 내달 21일까지 시립미술관

▲ 무제·mixed media on canvas·130x162cm·2006.
▲ 무제·mixed media on canvas·130x162cm·2006.
제8회 이동훈 미술상 본상을 수상한 원로 서양화가 이종학 화백의 초대전이 오는 8일부터 다음 달 21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이 화백은 1950년대 후반 비구상 작품을 발표한 추상 1세대 작가다.

이 화백이 그림의 세계로 접어든 과정은 당시 대부분이 그랬듯이 질곡의 시대와 동행한다.

공업학교 전기과를 졸업한 후 경성전기 주식회사(현 한국전력)에 입사하게 된다. 당시 배우지도 못했던 풍경화를 나무틀에 광목을 씌우고 명동 안료가게에서 사온 안료로 그려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던 사람이 그림을 그리려면 미술의 기본을 배워야 한다며 중앙회화연구소라는 곳을 소개해 이곳에서 2년을 공부하고, 1946년 설립된 서울대 예술대학 미술부 3회로 입학하게 된다.

▲ 무제·oil on canvas·100x80.3cm·2008.
▲ 무제·oil on canvas·100x80.3cm·2008.
이때부터 이 화백의 그림에는 시를 떠날 수 없고 그림이 시를 닮게 되는 '시중유화 화중유시'의 장으로 생각의 영역을 갖게 된다. 초기작품들은 대상의 외형을 없애고 본질을 남기는 일, 즉 잔영을 찾아내는 공간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결국 한국적 추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화백은 서예의 기법을 원용해 자연 이미지를 일필의 획으로 휘갈겨 여백의 미와 함께 추상미술세계를 선보여왔다.

1980년대에는 기생운동의 필력에 의한 텅 비어 있는 충만감을 나타낸 '추상정경'을 나타내며 '추상적 분출에 의한 구상성'의 완성이라는 평을 받았다. 당시 백색화면에 빗질하듯 분출된 정경들은 언덕이 되고 바람이 된다.

▲ 무제·oil on canvas·91.0x72.7cm·2008.
▲ 무제·oil on canvas·91.0x72.7cm·2008.
1990년대는 화면이 좀 더 비워져 하얀 바탕에 격렬하게 그은 필치는 행위예술의 흔적처럼 집약되고 마치 어떤 강변의 풍경이나 외딴 시골 한 자락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 당시 작품들은 대상으로서의 풍경이라기보다 심상에서 작용하는 향토 짙은 음률에서 배어나오는 서정적 추상의 진수를 보여줬다.

2000년대 이 화백의 작품에서는 유희적 아동의 낙서가 빼곡히 들어차기도 하며 '절대자유' 공간을 점유한다. 때로는 기억과 기억이 맞물리고 추억과 향수가 어우러져 꽃이 되고 사람이 되기도 한다.

먼 유년의 칠판이나 담벼락에 맛보던 자유로운 상상이 되는 것이다. '추상정경'은 절대적인 자유를 찾아간 결과 제목없음의 '무제'가 된다. 딱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몰아의 경지에서 시와 서와 그림이 한데 어울리는 화면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무제·oil on canvas·160x130cm·2010.
▲ 무제·oil on canvas·160x130cm·2010.
이 화백은 작품에 대해 “되도록 여백이 있어야 좋다. 그리고 그리면서 적당히 지워 나타나는 흔적을 조형화하는 일을 즐겨한다”며 “그릴 수 없는 자연을 존중한다는 것은 형태를 그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흔적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존중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것처럼 그리고 지워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흔적, 그 흔적에 아련하게 남아있는 이미지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화백은 구상에서 반구상 세계로 회화 미술의 발전적인 변화를 보였고 끝내는 형상문에 접근해 기호적인 추상화로 돌입하는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초대전에서는 최근 작품들로 구성된 42점의 유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88세의 나이에도 철저한 밑 작업의 바탕 위에 대상을 그리고 지워 그 위에 나타난 서체적 음률의 조화를 이뤄 무욕과 기교 없음의 향기가 배어있다.

이 향기는 어느덧 잔잔한 초원의 자연을 닮았다. 우리가 두고두고 간직할 이 화백의 예술향과 예술혼을 이번 초대전에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박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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