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환 대전사회복지관협회장 |
국민의 생명과 존엄에서 출발해야 할 복지논의를 무슨 포퓰리즘이네, 무슨 시리즈네 하면서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모양을 보고 있노라면, 진정으로 저들을 우리가 선출한 사람이 맞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보편적 복지나 선별적 복지라는 말은 대학에서 공부할 때나 필요한 용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힘들면 이해를 구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우선 그 상황에 맞게 시행하면 된다. 그것을 무슨 원칙을 들먹이면서 미루고, 가당치도 않은 학술용어나 외국의 사례를 열거하면서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할 이유는 없다.
늘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가난한 국민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가난한 국민들은 어느 한 순간도 마음 편하게 산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힘든 국민들을 벼랑 끝에 세워두고 흔드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러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끙끙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우리 국민이고 우리 이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몸부림을 쳐야만 겨우 찍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일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더구나 가난한 국민들을 돕자는 이야기에 무슨 기준은 그리도 복잡하고 난해한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급식문제만 해도 그렇다. 부잣집 아들이 군대 갔다고 밥값 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아들에게도 당연히 밥이 제공되어야 하고, 훈련에 필요한 장비나 과정이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의 소득이 일정액 미만의 장병에게만 식사와 그 밖의 것들이 무상으로 제공되는 군대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복지와 관련된 논의과정에서 유난히 재원에 대한 걱정을 앞세우는 일이 많은데, 정부에서 추진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재원은 얼마든지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여기에 구체적으로 열거할 수는 없지만 중앙정부가 투자하는 국책사업이나 집요하기가 고래 힘줄 같은 몇 가지 공약사업의 면면을 보면 복지재정의 확대가 도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누가 봐도 훤히 알 수 있다. 복지재정의 확충이 국가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잘못된 재정집행원칙이 국가의 재정위기를 초래할 공산이 오히려 더 크다.
복지과잉을 운운하는 것은 중앙정부의 당국자들이 내세운 이상한 숫자놀음에 현혹된 인식의 결과다. 아직도 한국의 복지는 보완해야 할 영역이 너무 많다. 영세민 집단거주지역에 있는 분들 중에는 자력으로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걸음을 옮기기도 힘든 어르신이 박스를 주워서 겨우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마당에 복지과잉을 언급하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 한심한 이야기다. 복지과잉은 고사하고, 복지서비스와 시스템이 제대로 구동될 수 있도록 마땅히 책임져야 할 중앙정부가 최소한의 재정부담으로 얼버무리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국민의 존엄과 생존을 담보하는 복지논의가 세치 혀 놀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난한 국민의 가슴을 더 이상 새가슴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국민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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