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완표 충남기업인연합회 회장 |
필자는 쉬는 날이면 가끔 도서관 나들이를 가곤 한다.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들의 향기에 취해 자신을 반성하고 채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하나의 우려스러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주식, 부동산, 경매에 관련된 책들에는 손때가 가득 묻어있어서 너덜너덜해져 있는 상태가 되면서도 인문교양 관련 책들은 일부 베스트셀러들을 제외하고는 너무도 깨끗하여 선명한 대조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재테크에 관련된 책들을 본다고 해서 이를 나쁘게만 볼 수는 없겠지만, 그 주된 관심사가 단기간에 한몫 단단히 벌어들이려는 투기적 요소를 근원으로 한다는 점에서 무조건 좋다고만 볼 수도 없거니와 잠시 잠깐의 현상으로 가볍게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금전적 성공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가정과 교육 그리고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그에 맞춰 돌아가는 형편이 되었다. 맹자는 “무엇을 가지고 이롭게 할 것이냐?”는 양혜왕의 질문에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 다투게 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게 된다”는 답을 한바 있다. 그 답과 같은 이러한 현상 아래에서 우리들은 공동체로서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과 스스로를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의미를 찾기 보다는 수치로서 계량화되고 평가받으며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항상 긴장과 초조함에 휩싸여 있어야 하는것이 바로 자살률 1위를 불러오는 우리시대의 현주소다.
이러한 현상은 남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불감(感)의 시대를 불러오며 실패와 외로움의 끝에 오는 공허함을 채울 수 없게 하였다. 공허를 채우지 못하는 상실감은 자신을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불감의 마음은 다른 이를 무너뜨리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자살 사이트에서 만나 동반 자살하는 이유도 공허함에 무너진 마음과 남들이 들어주지 않는 아픔을 그 순간만큼은 그들만의 공감(共感)으로 나눌 수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물욕과 불감이 지배하는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인성(人性)을 살리고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여 주는 공감의 새로운 현상의 바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공감은 질책과 독려보다는 마음의 근본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그 짐을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작은 교감 하나는 삶의 끈을 놓으려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큰 힘이 되어준다.
『논어(語)』 '자한(子罕)'편에는 공자께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도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30여 년 동안 천하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뜻을 실현해 보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한 고단한 삶을 사셨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무심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삶의 무상함을 탄식하신 것인지 아니면 물과 같이 쉬지 않고 학문에 정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공자의 삶은 언제나 고이지 아니하고 흐르는 물처럼 잠시도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고한다. 일찍 죽으려 하지 마라. 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천명(天命)이라 하였다. 우리 개개인은 조물주의 신묘함과 부모의 정성으로 태어나기에 그렇다. 하늘이 주신 목숨 스스로 마감하지 않아도 생로병사에 의하여 또는 사고에 의하여 결국은 종착역인 죽음에 이르게 되어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면 그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나누고 즐기는 공감의 시대를 만들어보자. 성상근습상원(性相近習相遠)이라 하여 천성은 원래 큰 차이가 없으나, 습관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고 하였다. 즐기다보면 세상의 이치와 지나간 날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공자와 같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고단함 속에서도 배움의 여유를 잃지 않으셨던 공자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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