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영 미술학 박사·평론가 |
“비구상 계열의 젊은 작가 5명이 르뽀 동인회를 창립, 19일부터 대전문화원 전시실에서 창립전을 열고 있다.
1973년 비구상 12인전 이후 비구상계열의 작품전인 이번 전시회에는 권영우 씨를 비롯 5명의 작품이 선보였다.
이들이 사용한 소재는 붕대, 색연필, 풀 등 다양하다. (중략)”(한 지역일간지 기사)
르뽀의 창립전에서는 이제까지 대전 작가들이 주로 사용하던 수채화 물감이나 유화 물감을 벗어난 재료들인 붕대, 색연필, 풀 등으로 신선한 미의식을 심어주고자 했지만, 관객들과 주변 작가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비춰졌다. 박명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동양백화점 자리가 지금의 문화원이었죠. 4층에 문화원이 있었고, 전시장도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1년에 10번도 전시가 없었을 때죠. 당시 관객은 전시장 문만 열어보고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큰 마음 먹고 불모지인 대전에서 추상화 창립전을 했는데, 봐주는 이가 없었죠. 전시가 끝나면 오복식당에 매일 가서 두부와 콩나물, 소주를 먹으면서 전시의 씁쓸함을 달랬던 기억도 납니다. 일주일 전시했지만 보러 온 관객은 몇 명 없었죠. 추상이었기 때문입니다.”
1977년 12월에 열린 르뽀 2회전 때는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서문을 썼다.
▲ 1976년 5월 22일 르뽀 동인회 창립전에 대해 쓴 한 지역일간지 기사. |
오광수가 쓴 서문은 아래와 같다.
“현대미술에 있어 가장 뚜렷한 현상의 하나로 미술의 중심지 개념, 즉 지역 개념이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파리나 뉴욕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미술의 정보는 시간차로 세계에 파급된다. 굳이 파리나 뉴욕이란 중심지로 몰려들던 종전까지의 중심지 개념이 무색해진 것이다. 현대는 지역을 넘어 시대적인 단위로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형성되어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도시와 농촌, 중앙과 지방의 격차는 현저하게 해소되어가고 있다. 미술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예외가 아닌 것 같다. 70년대에 접어들어 부산, 대전, 광주, 춘천 등 각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현대미술운동은 종전까지의 서울 중심의 운동체를 분산시킨 현저한 현상이다. (중략)
대전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 몇 사람이 모여 르뽀를 출발시켰다.
이 그룹은 대전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종전까지의 지방 작가들의 모임은 아니다.
이들은 뉴욕이나 파리나 서울에 있는 작가들과 똑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들과 같은 의식의 작업을 펼쳐보이고 있다.
단지 주위의 이해도가 낮고 호응자가 적은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는 불리한 조건이 이들을 더욱 외롭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머지않아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킬 날이 올 것이다.”(르뽀 2회전에서 오광수의 서문)
당시 2회전 평론에 대해 유근영과 박봉춘은 주례사 같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박명규는 평론하는 사람이 글을 써주면 그룹을 대변해줄 것으로 믿어 게재한 것이다.
르뽀의 3회전은 1978년 대전문화원에서 열렸지만, 팸플릿이나 이에 대한 자료는 소실되고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1982년 2월 15일 대전 근대화랑에서 르뽀 동인초대전이 열렸다.
이때는 유근영이 빠지고 박명규, 신동주, 권영우, 박봉춘, 김영배, 김관호, 김세중, 지치우, 강성열까지 총 9명으로 재구성된 멤버들로 이루어졌다.
초대전 팸플릿에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당시 유근영이 르뽀 멤버로 가담하지 않은 배경은 교직을 사직한 후 1979년에 홍익대 미학과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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