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피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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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피난길'

글·그림 임양수(화가)

  • 승인 2011-06-21 16:54
  • 신문게재 2011-06-23 20면
▲ '피난길1950.6.28' 크기,P 10호. 종이에 유채. 2011년 작.
▲ '피난길1950.6.28' 크기,P 10호. 종이에 유채. 2011년 작.

쿵쿵쿵…
공산군들의 대포사격에
모심은 논이 뒤집히고
초가집이 들썩이며
마을은 풍비박산으로
논흙 물을 뒤집어썼다.

북한군과 유엔군은 제2의수도 대전을 사수하기위해 대평리 다리를 사이에 놓고 콩튀기는듯 총소리가 공방전으로 등등하던 때다.

1950년 6월28일 시골 고향으로 피난 가던 때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등짐위에 여섯 살 먹은 나를 올려놓으셨다. 삼십 초반의 아버지께서는 공무원으로 육남매의 가장이셨다. 아버지께서는 연기 금남면 감성부근 입구에서 내무서원의 검문을 당하였다. 팔뚝에는 붉은 완장을 찬 사내들과 밀집 모자를 쿡 눌러쓰고 와이셔츠가 펄럭일 때마다 허리춤에 찬 차가운 권총이 섬뜩해 보였다.

“동무, 오른쪽검지손이 굳은살 박인 것 보니 총 많이 쏜 경찰관이었지?”

“아니오 난, 농사꾼이요.”

“우리남편은 낫질을 많이 하여 굳은 살에유”하셨다. 겁에 질린 어머니께선 울음을 터뜨리며 항변하셨다. 슬기롭게 대처하여 위기를 모면한 어머니의 임기응변이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쓰라렸던 추억으로 타계하신 부모님 생각에 잠기게 한다.

<작품해설>

▲  글·그림 임양수(화가)
▲ 글·그림 임양수(화가)
어느 날 시인이신 曉天 임웅수형이 보낸 '기억의 삽화'를 받고 작품제작에 임하였다. 작품에는 아버지를 선두로 한 가족들이 묵묵히 걷고 있다. 삼십 중반의 건장하던 아버지의 등짐위에 걸터앉은 여섯 살의 필자는 순진무구하게 보인다. 장손인 아홉 살 형은 신주단지가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삐그덕'대며 연신아버지 뒤를 따르고 있다. 형이 맨 가방 속에는 족보와 증조부의 예학박사 성균관의 첩지가 들어있었다. 전쟁과 피난길, 침묵과 암울함, 생과사의 갈림길, 어린새끼들, 어깨와 머리에 인 보따리 속에는 무엇들이 숨겨져 있을까?

어머니께서는 여러 자식들의 먹 거리와 살림걱정으로 피난길을 헤쳐 나가는 강한 모습을 느끼게 한다. 머리위에는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등에는 세 살짜리 여동생이 업혀져있다. 6월 그믐더위로 밤에는 전쟁으로 죽어간 시신들의 피를 빨던 모기떼들로 극성을 부리는데 동생도 괴로운지 시도 때도 없이 으앙! 대며 어지간히 울어댔다. 피난 떠난 길가 집에서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께선 새끼노란 병아리를 잡아 저녁끼니를 준비하셨다. 살림밑천으로 여기던 큰누나는 방년 18세로 대동 여학교(현 대전여고자리)를 다녔다. 일제말기 대동아전쟁으로 정신대차출을 막느라 부모님의 마음고생이 컸었다고 들었다. 꼿꼿한 허리에 어깨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이 눈길을 끈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었어도 싱싱한 패기를 그림으로 엿볼 수 있다. 누나들은 어머니를 도와 어린동생들을 많이도 업어주셨다. 15세 작은 누나 동수는 맨 뒤에서 책가방을 들고 따라 붙고 있다. 피난길보다는 콧노래 속에 원족 가는 싱그러움을 느끼게 표현하였다.

필자는 1969년 월남 참전용사이다. 전쟁은 인류문화를 말살하는 몹쓸 짓으로 연습 삼아 생각도 말아야할 살육전이라는 것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암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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