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욱 배재대 심리철학과 교수 |
이 곳에서 상연된 많은 작품 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 진 것도 많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대부분의 부모는 어린 자식이 무엇인가 잘못하면 혼을 낸다. 그렇다면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자식도 부모가 잘못하면 혼을 내거나 매를 들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를 풍자하여 유명해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 나오는 얘기다. 바로 이 '구름'을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완벽한 비극, '오이디푸스 신화'를 쓴 소포클레스도 이 축제를 위해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부터 2500년 전 아테네 사람들은 지역축제를 통해 그들만의 문화행사를 즐겼다. 그것보다 200년 앞서 그리스의 최초 철학자 탈레스가 나타난다. 모든 철학사에서 왜 그리스 사람들이 철학을 했는가하고 묻고는 그것에 대한 답으로 여유를 얘기한다. 즉 여유가 철학을 발생시킨 이유다. 그 여유가 200년이 지나 디오니소스축제로 이어졌고, 그렇게 그리스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이 여유로운 문화를 즐긴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 문화의 여유를 즐기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 중앙에 집중되어 있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 문화의 여유로움을 즐기기에는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다. 그런 면에서 대전은 예외다. 대전에서도 대형전시회와 대형공연이 많이 열리고 있다. 하지만 대전을 찾는 공연기획사는 여전히 불만을 갖고 있거나 대전 공연을 꺼린다고 한다. 대전충청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양반의식 때문이다. 아마도 좋고 나쁨을 바로 표현하지 못하는 대전충청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
문제는 대형공연이나 전시회가 지역자생문화의 길을 막는다는 것이다. 양반의식에 차 있는 대전이지만, 그래도 대형전시회나 대형공연은 성공을 거두지만, 지역에 뿌리를 둔 공연이나 전시회는 여전히 홀대를 받고 있다.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이례적으로 대전에서 시작된 연극이 서울 대학로에서 상연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경로당 폰팅 사건'은 서울에서도 2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하니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좋은 연극 외에도 대전예술의전당에서는 1000원짜리 공연을 비롯하여 작품성 있고 유명한 공연과 기획 작품전시회를 많이 개최된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의 공연' 내지 '집안 잔치'라는 이름을 얻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원인은 아마도 지방의 소규모 공연은 재미없고, 대형공연은 재미있다는 등식 때문일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등식 외에도 기획사의 불평을 우리는 모른 채 할 수 없다.
양반이니까, 대전충청인이니까 박수를 치지 않거나 앙코르를 외치지 않는 등과 같이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연시간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사진을 찍는다거나, 작품을 만지는 행위와 같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행위가 그것이다.
디오니소스광장에서는 2700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를 비롯하여 소위 말하는 수준 높은 공연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그리스 사람들이 처음부터 수준을 갖고 공연을 즐길 줄 아는 문화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유로움과 시간이 그들을 문화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양반으로 대전충청인의 좋지 않는 선입견을 벗기 위해서는 조금만 더 여유로움을 갖고 지역자생문화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즐길 줄 아는 문화로 발전한다면 문화인은 스스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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