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반찬 한상에 차리는 예도 따라야
한류의 시대 주체성 잃어서는 안돼
▲ 도한호 침신대 총장 |
동구권과 일부 유럽 나라들은 봉건시대에는 소금을 화폐 대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소금을 돈같이 소중하게 여기며, 당시 영주(領主)들의 소금저장고를 우리의 옛 은행 건물처럼 잘 보존하고 있다.
그 지역은 예부터 손님에게 싱거운 음식을 대접하면, '그 집 되게 짠 집이야'라고 비난 받았고, 음식에 값비싼 암염(巖鹽)을 듬뿍 넣어주면 인심이 후하다고 고마워하는 나라들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관광객이 아무리 음식이 짜다고 불평해도 그들은 결코 그들의 고유한 음식을 싱겁게 만들어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와 아랍 권에서는 수저를 사용하지 않고 오른 손으로 음식을 먹고, 프랑스는 까다로운 식탁예절을 간직하고 있다. 남미의 감자요리와 이탈리아의 피자, 영국의 파스타와 일본의 스시는 그들 나라들이 각각 문화유산으로 간직하는 것이므로 예절과 요리법에 그 어떤 수정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적 음식과 상차림은 지난 세대까지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온 것 같았는데 언제부터인가 국적불명의 형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의 전통 음식인 한식(韓食)은 식당에서는 대개 한정식(韓定食)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상차림부터 우리 전통에서 멀리 떠난 것으로 보인다.
선조들은 가족의 수에 알맞은 상(床)에 음식을 차려 먹었고 잔치를 할 때나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큰 교자상(交子床)에 음식을 가득 차렸다. 원래 한식은 밥과 반찬(飯饌)을 한 상에 차려내는 것인데 근래의 한식은 반찬을 먼저 내놓고 후에 밥을 공궤하며, 비슷비슷한 음식을 여러 번에 나누어서 차려낸다. 청요리는 접시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요리, 즉 일품요리(一品料理)이기 때문에 하나씩 차려내지만 한식은 접시 하나하나가 독립적 요리가 아니라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인데 왜 청요리 절차를 따른단 말인가. 이는 음식의 기본을 떠난 상차림으로써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먹는 이와 접대하는 이 양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방식이다.
일전에는 도심의 한 한(정)식 전문 음식점에서 손님을 접대했는데, 상에는 먼저 간단한 밑반찬과 부침개와 물김치 등이 나오고, 다음으로 찰떡이 나오고, 이어서 생선 구이와 김치, 튀김과 각종 나물 접시, 회(膾), 육회(肉膾), 갈비찜 등등이 차례대로 나왔다. 이것저것 먹는 중에 느닷없이 국이 나오고 국을 다 먹은 후에 상을 치우더니 그제야 밥과 된장찌개가 나왔다. 열두시 반에 음식을 주문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 두 시가 거의 다 되었다.
여행객들이 아무리 불평해도 프라하의 요리사들은 닭요리를 싱겁게 만들지 않을 것이며, 이탈리아 피자에는 그들이 원치 않는 토핑을 올려놓지 않을 것이며, 일본의 요리사들은 스시를 김밥처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음식, 지금부터라도 국적불명의 상차림을 버리고 선조들의 예도에 따라 옛 방식대로 한 상에 밥과 반찬을 차려내야 한다. 우리 한식도 머지않아 한류(韓流) 바람을 타고 세계 진출을 시도해야 할 터인데 이런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말이다. 외교나 국방이라면 몰라도 식탁에서 마저 주체성을 잃어서야 될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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