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국제로타리 3680지구 전 총재, 연세소아과병원장 |
'마침 잘 만났다'면서 밭에서 상추를 뿌리째 몇 뿌리 캐서 비닐 봉지에 담아주신다. '횡재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염치도 없이 봉지를 들고 집에 들어와 아내와 함께 상추를 씻어서 저녁 반찬으로 먹었다. 방금 딴 상추는 된장 양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달고 고소했다. 이 면장 덕택에 아내에게도 점수를 땄다.
시골에 정착하면서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나도 언젠가는 손바닥 만한 땅이라도 마련해서 우리 식구 먹을 채소는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지는 벌써 몇 년 된다. 천성이 게을러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직접 농사짓지 않아도 방금 딴 싱싱한 채소를 얻어먹을 기회가 가끔 있다.
20여 년 전에 대가족이 함께 모여 살 때 얘기다. 우리 집에도 자가용이 있어야 겠다는 주제로 가족회의가 열린 적이 있다. 그날 회의의 결론은 -내가 아닌- 내 아내가 운전을 배워서 집안 일과 애들 유치원 바래다주는데 차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흔을 훌쩍 넘기고서야 운전면허를 땄다. 그동안 하루 쉴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면허시험 볼 시간조차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 운전면허 없는 변명이었다. 거기에 덧붙여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차를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어딘가를 가고자 하면 대부분의 경우 나를 태우고 갈 사람이 있더라는 것은 살면서 체득한 경험이다. 차 없이 산다는 것이 별로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행성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을 놓을 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국민이 한 명도 빠짐없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인구의 80~90%만 접종을 받으면 받지 않은 사람들도 그 질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10~20% 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있더라도 그 징검다리가 드문드문 놓이면 질병의 전파가 상당 부분 차단되기 마련이다.
살면서 많은 끔찍한 뉴스들을 접하게 된다. 최근에는 무슨 저축은행의 '남의 돈 갖고 장난치기'가 커다란 화제로 부상되었다. 돈 갖고 하는 장난이 상상의 수준을 넘어 애들 구슬치기 하듯이 한심한 작태를 연출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하는 불안감을 얘기한다.
'지독하기는 하지만 깨끗하다'는 평을 듣던 한 대기업마저 부정부패 사례가 드러나면서 한국 전체의 청렴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보니 정말 많은 문제들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그런 문제들을 모두 합치면 이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신기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와 이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사실 따지고 보면 한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운다.
마음 착하고 세상을 반듯하게 살고자 하는 평범하지만 훌륭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사회적 문제라는 질병이 멀리 퍼지지 않고 예방과 치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는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라는 무서운 사회적 질병조차도 그것이 통과하는 징검다리만 제거한다면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징검다리를 제거하는 힘은 세력가가 아닌 평범한 민초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진실이다. 그래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민중은 말이 없지만 똑똑하고 무섭다'고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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