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혜영 연기 전의초 교사 |
몇 해 전 처음으로 6학년을 맡아 졸업시키고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아이들인데 해마다 만나 왔지만 이번 스승의 날은 좀 더 특별했었다. 바로 아이들의 편지 덕분이다. 얼굴 빨개지도록 부끄러워하며 직접 편지를 읽어주었는데 잊고 지냈던 옛날 추억과 이야기거리, 그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편지 내용에 너무 감동한 나머지 그만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사실 그 해를 떠올려 보면 별로 잘해준 것도 없고, 학급의 힘든 몇몇 아이들 때문에 엄하게만 하고, 좀 더 따뜻하고 살갑게 대해 주지도 못하고 졸업시킨 것 같아 내내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던 터였다. '선생님이 초등학교 때 선생님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제일 좋아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요'라는 편지 문구에 순간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사실 요즘 선생님들에겐 가장 기피학년이 바로 6학년이다. 사춘기 아이들 생활지도에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준비까지 하려면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학년담임은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 6학년 담임에겐 한 가지 있다. 바로 아이들의 '졸업'이다. 아이들은 6년간 많은 담임을 만나지만 6학년 담임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마무리 지어 준 마지막 선생님이기 때문에 반창회나 동창회는 물론 스승의 날도 졸업식 때 헤어진 6학년 담임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객관적으로도 힘든 부분이 많은 6학년을 하면서 자신의 교육적 소신을 만족하리만큼 펼쳐내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그만큼 더욱 아쉬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이듬해 스승의 날 꽃 한 송이 들고 찾아와 '저 00등이나 올랐어요. 저 반장됐어요' 등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며 조잘대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게 교사로서 행복이구나' 새삼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이라고 기억되어 함께 추억을 담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제일 좋은 선생님이고 말해주며 늘 좋았던 것만, 늘 재미있던 것만 기억을 해주다니… 이제 자기들도 곧 고등학생이라며 제법 어른인 척 어깨를 으쓱대고는 '지금 아이들은 말은 잘 듣냐, 안들으면 혼내 줘라, 선생님 힘든 것은 없냐'며 마구 질문해대는 아이들이 너무나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어느 새 이만큼 컸을까 깜짝 놀라면서도, 내 눈에는 그저 먹을 거 좋아하고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걸 좋아하던 초등학교 6학년 꼬맹이들로만 보이는 건 왜일까?
비단 6학년 담임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1년이라는 시간을 종일 함께 지내며 제2의 부모처럼 아이들을 보살피는 초등학교 교사는 진급을 시키거나 졸업을 시킬 때가 되면 그동안 쌓인 정 때문에 더욱 많은 아쉬움이 들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의 추억보따리는 교사와 아이들의 기억 속 '타임캡슐'에 저장된다. 언제든 열어서 하나씩 추억을 꺼내 볼 수 있는… 교사로서 힘들고 지칠 때 꺼내보면 힘이 불끈 불끈 날 것 같은 그런 '타임캡슐' 말이다.
그 해 졸업식에서 아이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단순히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라기보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많았기 때문이었는데 아이들은 그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는가 보다. 아이들의 한없는 에너지와 순수함 그 존재감들이 나에겐 더욱 힘이 되는 것 같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지금껏 과연 교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쳤던가. 한 번 뿐인 아이들의 초등시절에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가…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못난이 울보' 선생님을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사랑스런 아이들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교사로서 살아갈 수 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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