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환 대전도시철도공사 사장 |
특히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그 날에 전사한 꽃다운 청춘들의 스러짐과 유족들의 아픔이 전해지는 듯해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시선과 경험, 판단으로 일제치하의망국의 설움과 광복, 한국전쟁의 참상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언론도 현충일과 오는 25일 한국전쟁 발발 61주년과 관련한 특집기사와 보도와 방송을 내보내고 있기도 하다.한국전쟁 당시 기가막히고 참담한 슬픔을 안겨준 사연도 있었다. 형제가 61년만에 이산가족처럼 살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유해 상봉'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1950년 9월 당시 19살이던 경북 청도출신의 이천우 병장은 한 달 앞서 입대한 형 이만우 상병과 함께 전선을 누비다가 이듬해 5월 형은 경기도 고양에서 전사하고 동생은 넉달 뒤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산화했다. 두 형제의 유해를 찾지 못해 실종사망 처리됐고, 두 아들의 유해조차 품에 안아보지 못했던 어머니는 16년 전에 한을 품고 돌아가셨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백석산에서 발굴된 국군 유해 가운데 인식표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동생 이천우 병장의 유해가 수습된 것이다. 61년만에 두 형제는 서울현충원 묘역에 나란히 안장됐다. 전쟁이 강요한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비극인 셈이다.
혹자는 '착한' 전쟁이 있고 '나쁜' 전쟁이 있는 것처럼 구분해서 말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쟁은 모두 나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어떤 전쟁도 비참하고 반문명적이고 인류파괴적이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동족끼리 서로 피를 흘려야하는 전쟁이야말로 그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민족간, 침략국과 전쟁터가 다른 전쟁보다 민족전쟁은 두고두고 같은 땅에서 같은 시간을 철천지 원수처럼 보내야하기 때문에 전쟁 후유증 또한 모든 분야에 깊은 상처를 내고 치유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에 대한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이 과거의 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북한이 남한의 군사훈련을 핑계삼아 연평도를 포격했을때, 포연에 휩싸인 평화로운 섬과 당황함과 공포가 짙게 드리운 주민들의 표정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록과 역사속에 있던 전쟁이 실제로 터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세계적 군사 강국인데다 우리와 맹방인 미국, 그리고 한반도 주변의 국가들이 남북긴장 완화 노력을 지속해 왔고 이러한 외교정책과 견제, 다자간 대화가 있기때문에 한반도에서의 재차 전쟁은 상상력에 불과할 뿐이라고 믿고 살았던 일상에 큰 충격을 줬다.
연평도 도발후 반사적으로 안보의식 강화의 필요성과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조치 주문들이 쏟아졌지만, 좀더 근원적으로 접근해 보면 '전쟁은 안된다'에 모아지지 않았나 싶다. 이념적·정치적 명분과 목적이 여하간 이를 이루기 위해 전쟁을 치르는것 보다 전쟁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이념과 명분을 만드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어떤 이가 '평화에 들이는 비용(경제적인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전쟁을 치르는 비용보다는 훨씬 적다'는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호국보훈의 달. 우리의 오늘을 위해 먼저가신 영령들의 숭고함에 깊은 감사와 유족의 아픔을 보듬으면서 '평화'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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