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필우 한국기계연구원 열유체시스템연구실 책임연구원 |
영화 '친구'에 나온 유명한 대사다. 고(故) 조오련 선수가 아무리 아시아의 물개였다지만 바다거북이보다 더 오래 바다 속에서 버틸 수는 없다.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최단거리 빠르기 시합 승자와 패자는 가늠할 수 없지만 긴 거리의 시합에서라면 바다에서 자유롭게 숨을 쉬는 바다거북이가 분명한 승자다. 사람이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면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을 떨친 조오련 선수와 느리기로 소문난 거북이는 시합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육상에서 보내면서도 물속에서 비교적 오랜 시간 버틸 수 있는 생물은 곤충류다. 거미 등 일부 곤충의 경우 갑작스런 사고로 물에 빠져도 수 십 분에서 수 시간 동안은 물속에서 살아남는다. 어떻게 가능할까?
곤충들은 공통적으로 몸 표면에 털을 많이 가지고 있다. 털은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疏水性)을 지닌다. 털과 털 사이의 간격이 조밀하면 물이 침투하지 못해 특정한 물의 깊이까지는 털과 털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된다. 물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수압이 작용해 물과 공기 사이의 경계면이 공기층 방향으로 팽창하게 된다. 공기층이 붕괴되는 어느 한계선까지는 물속으로 깊이 잠수할수록 물과 공기 사이 경계층의 표면적이 계속 늘어나게 된다. 물속의 용존산소가 공기층으로 빠져나오는 양은 표면적이 늘어날수록 커진다. 곤충이 물속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은 곤충에서 착안해 소수성 표면을 갖는 다공성 물질을 제작해 용존산소의 움직임에 관한 실험을 했다. 다공성 물질 안에 공간을 만들어 산소 센서를 연결한 후 물속에 넣은 상태에서 물속 용존산소의 양과 다공성 상자 내 산소 양의 관계를 조사했다. 용존산소의 양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때 상자 내부의 산소의 양도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이에 비례해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또 물과 다공성 상자 사이에 용존산소의 이동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다공성 상자 내부에 일정한 비율로 산소를 소모하는 소자를 넣은 상태에서 상자 내부 산소의 양을 측정했다. 다공성 상자 내부의 산소를 소모하는 소자 때문에 처음에는 산소가 줄어들다가 감소되는 양만큼 상자 밖 물속에서 산소가 공급됐다. 상자 내부의 산소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 것이다.
사람이 호흡하기 위해서는 1분에 1 정도의 산소가 필요하다. 다공성 상자의 실험 예처럼 표면적을 늘리면 이론적으로는 사람도 물속에서 용존산소를 이용해 호흡할 수 있게 된다. 물속에서 아가미를 통해 자유롭게 호흡하며 서식하는 물고기처럼 사람도 수중에서 용존산소를 이용해 자유롭게 호흡하며 활동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고기의 아가미를 닮은 장치, 즉 '인공 아가미'를 사람이 사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아이디어다.
인공아가미 기술이 적용된 휴대형 마스크를 쓰거나 잠수복을 입어 사람도 물고기처럼 필요한 산소를 그 때 그 때 즉시 물속에서 공급받아 호흡할 수 있다면 호흡 곤란을 겪지 않고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비록 지금까지 개발된 소용량 '인공 아가미' 기술로는 공급할 수 있는 산소량이 한정됐지만 훗날 기술 개발로 대용량 인공아가미 장비가 휴대가 가능할 정도로 작아져 상용화 될 때쯤이면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사람들은 더 이상 무거운 산소통 관련 장비를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안타까운 익사사고 소식 또한 더 이상 듣지 않게 될 것이다. 한 평생 깊은 바다 속 해조류를 캐느라 잠수병을 지병으로 달고 사는 해녀들의 시름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조오련과 바다거북이가 넓고 깊은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서 수영 시합을 해 조오련이 이기도록 하는 힘, 이것이 과학기술의 힘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기 위해 오늘도 과학자들의 연구실은 밤이 늦도록 불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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