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1994년 서울 근교의 발암교가 폭발하고, 정부는 북한 간첩단의 소행으로 발표한다. 이방우 기자에게 동네 후배 윤혁이 찾아와 가방을 건네준다. 가방 안에 든 플로피디스크엔 발암교 사건의 진실이 담겨 있다.
지난달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구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모론을 정리해, '세계 10대 음모론'을 발표했다. 1위는 미국 정부가 9·11 테러 계획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했다는 '미국 자작설', 2위는 미국 네바다 주의 공군기지 '에어리어 51'에 외계인과 UFO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내용이 차지했다. 3위엔 지난 1977년 세상을 떠난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존설이 올랐다. 의혹이 가시지 않는 사건에 대해 나름의 해석으로 귀가 솔깃한 해답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음모론은 흥미롭다. 더욱이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가설은 세간의 시선을 끌어 당긴다. '모비딕'은 우리 시대 한국 사회의 음모론을 파헤친다.
정부 위에 정부가 있고, 사회 곳곳의 의문의 사건들은 이들이 거대한 음모를 진행하기 위해 세상의 이목을 돌리려는 것이란 가설이 눈길을 잡아끈다.
'모비딕'은 1990년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당시 보안사령부에서 근무하던 윤 이병은 군 소속인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하고 있다고 폭로해 '그림자 정부' 논란이 일었고, 더욱이 그가 가지고 나온 사찰 대상 목록엔 전직 대통령도 포함돼 큰 파장을 일으켰었다.
제목 '모비딕'도 당시 보안사가 민간인 사찰을 위해 서울대 앞에 만든 카페 '모비딕'에서 따왔다. 그러고 보면 '모비딕'이란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극중 주인공 이방우는 벽에 부딪는 꿈을 꾼다. 아무리 만져 봐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이 벽은,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거대한 고래다. 발버둥 쳐 봤자 실체를 알 수 없을 거라는 상징, 모비딕이다. 소설 '모비딕'에서 고래를 쫓는 에이하브 선장의 토로도 떠오른다. “사물의 이면을 다시 보게. 모든 가시적인 것들은 사실상 종이가면에 불과하네… 모비딕이 대리인이든 실체이든 상관하지 않아.”
결론부터 말하면 영화는 음모의 실체를 끝까지 까발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은 “개운하지 않다”거나 “허전하다”, “맥 풀린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미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모비딕'은 올해 나온 상업영화 중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발암교 폭발사건'을 계기로 그림자 정부는 더 거대한 음모를 진행하고, 전혀 다른 지점에서 이를 쫓는 기자들이 출발한다.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영화는 폭발한다. 이 과정에 이르는 긴장감은 단연 최고다. 일련의 사건들과 추격전들은 탄탄한 밀도감이 느껴지고 흥분도 잘 전달된다. 주제와 표현도 흐트러짐 없이 잘 묶어놓아 눈을 뗄 수가 없다.
'모비딕'의 홍보 문구가 '대한민국 최초의 음모론'이다. 미완의 해결은 이 '음모론'에 정확히 부합한다. 음모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음모론은 더 이상 음모론이 아니잖은가. 완전한 해소를 향하지 않은 점이 외려 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음모는 진행 중이라는 현실을 향한 고발은 아닐지. 스릴러 장르 팬이라면 기억할만한 감독의 이름이 하나 더 늘었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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