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확보후 구성원 희생 요구해야
▲ 정용길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 |
참여와 소통이 단절된 채 그들만의 일방적 통합논의로 인해 촉발된 구성원 간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진다는 것인가?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면서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라는 지역사회의 소망을 송두리째 팽개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허망한 결과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은 보이지 않고 통합 결렬의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치졸한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비록 오늘은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대학통합은 가야 할 길이기 때문에 내일을 위해 왜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인지를 살펴보자.
무슨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목표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의 통합논의는 대학통합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절차와 과정이 대단히 잘못되었다. 통합논의가 원만하게 진행되려면 3개 대학이 통합에 대한 기본적 안이 있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각 대학의 안을 조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논의과정을 보면 어느 대학도 학내에서 진지한 논의와 토론이 없었다. 각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통합안은 없고 총장들의 개인적 구상만 있었을 뿐이다. 충남대 총장은 교명 변경과 대학 본부의 이전과 같이 매우 예민한 문제를 미리 흘려 스스로 통합논의의 걸림돌을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했다. 공주대 총장 역시 이 문제를 대승적 차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공주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대학 사회에서 불과 두 달 만에 통합논의를 끝내겠다는 계획 자체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 통합이 성공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통합추진위원회의 태생적 한계다. 이번의 3개 대학 통합은 큰 대학이 작은 대학을 흡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 신설통합의 형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내구성원들로만 이루어진 통합추진위원회는 각자 자기 대학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양보와 타협의 정신은 실종되고 자기 대학의 이기적 욕심에 가려져 한 걸음도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는 이로부터 자유로운 외부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컨설팅 기관이 3개 대학의 장단점과 각 대학이 처한 환경적 특성을 고려하여 캠퍼스 특성화와 구조조정, 그리고 통합 대학의 비전과 장기발전계획을 만들도록 했어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통합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져야 하며, 통합추진위원회에서는 미세조정만 가능하도록 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통합에 임하는 각 대학 총장들의 진정성 문제다. 진정 그들이 '글로벌 시대의 대한민국 대표 국립대학'을 만들기 위해 통합논의를 시작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총남대 총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통합을 성사시켜 총장 연임에 도전하든지, 아니면 퇴임 이후를 대비하여 대학통합을 그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의심을 받아 왔다. 공주대 총장은 천안으로부터의 교명변경 압력을 통합논의를 통해 회피하고자 한다는 눈총을 받았고, 통합대학의 성공적 출발을 위해 본인의 잔여 임기를 포기하겠다는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처럼 각 대학 총장들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대학구성원들에게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었다.
3개 대학의 통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합논의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가 확보되어야 하며, 더 큰 가치를 위해 총장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희생과 양보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장관과 대학 총장들이 모여 양해각서를 체결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 대학 통합이 애들 장난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끝낸다고 하는 것은 이 지역과 대학의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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