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규]즐거움의 역치, 분노의 역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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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규]즐거움의 역치, 분노의 역치

[중도춘추]정일규 한남대 교수

  • 승인 2011-06-09 14:26
  • 신문게재 2011-06-10 20면
  • 정일규 한남대 교수정일규 한남대 교수
아내가 깎아준 참외 한 조각을 집어 먹는데 단 맛이 거의 없었다. 맛이 왜 이렇게 없는지 항의(?)하려다 조금 전에 초콜릿을 무심코 집어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미각역치'라는 말을 떠올리며 혼자 실소하였다.

우리 혀에는 '미각역치'가 있어서 그 역치보다 당분이나 식염이 적게 포함된 음식을 먹으면 달거나 짠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만일 단맛에 대한 미각역치가 높아지면 점점 더 단 음식을 찾게 되며, 그 결과 비만은 물론이고 각종 심혈관계와 대사 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인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짠맛에 대한 역치가 높아져서 식염을 과다섭취하고, 그 결과 위암이나 고혈압, 뇌출혈의 발생률이 높다.

그런데 이러한 역치는 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자극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에도 있는 것 같다. 그 예로서 즐거움이나 슬픔의 역치, 두려움이나 분노의 역치, 수치심을 느끼는 역치 등을 들 수 있다. 미각역치가 높아지면 몸에 질병이 오지만, 즐거움을 느끼는 역치가 높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역치는 고정된 값이 아니라 시대와 주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특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같은 갑부도 지금 평범한 사람이 갖고 있는 성능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은 구경도 못해보았다. 또 현재의 기준으로는 60년대 말 흑백 TV를 집에 처음 들여 놓을 때 느꼈던 행복감의 크기를 잴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즐거움을 느끼는 역치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결정됨을 말해준다.

오늘날 한국인이 갖고 있는 '즐거움의 역치'는 과연 어느 수준일까? 즐거움의 역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즐거움의 역치가 높아질수록 '분노의 역치'는 낮아진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에 대한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자명하다. 즐거움의 역치가 높아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역치가 우리의 의식 속에 물질적 성취나 사회적 성공이라는 한 가지 척도로만 고정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보란 듯이 잘 산다'라든가 '떵떵 거리며 산다'는 말이 있다.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말도 있다. 이 말들에는 '잘사는 것'의 동의어는 부자가 되는 것이고, 부자가 되는 것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함이며, 그렇지 못하면 남을 부러워하게 된다는 심리가 담겨있다. 이처럼 물질적 비교우위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 천박한 가치관이 팽배해지면 사회계층간 불신과 갈등이 깊어진다. 그럴수록 못 가진 사람의 '분노의 역치'는 낮아진다.

한국청소년의 자살률이 OECD국 중에서 1위이며 계속 증가추세라고 한다. 즐거움의 역치가 하나의 척도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성적순위'를 즐거움의 유일한 척도로 삼을 것을 교육이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의식 속에서 '성적순위'가 물질적 소유와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는 '즐거움의 역치'로 치환되는 악순환이 여기서 비롯된다. 영교시수업과 야간자율학습으로 하루 종일 학교라는 감옥에 갇힌 우리 청소년들의 '분노'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학교에 지친 아이들에게 후일의 성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유보해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 가르쳐야 한다. 독서와 예술, 스포츠 등의 조그마한 성취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나눔을 통해서는 더 큰 즐거움이 있음을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 공정한 사회는 모두에게 동일한 시험지로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참다운 즐거움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지 도와주려는 교육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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