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미란 편집팀 차장 |
눈만 뜨면 새로 생겨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들. 끼와 재능으로 똘똘 뭉친 일반인들과 연예인들의 색다른 변신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거기에다 평소에는 TV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각 분야의 종결자(?)들이 심사위원으로 나서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한다. 그야말로 시청률 상승의 일등공신이다.
종결자들의 입담은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더 거칠어지고 독해진다. 마치 프로그램 자체가 '독설가 양성소'라도 된 듯 자고 일어나면 '누가 누구에게 어떤 독설을 했다'라는 식의 기사가 인터넷을 달구고 어김없이 '독설스타'가 탄생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내뱉는 신랄하고 통렬한 언변에 매료되고 또 닮아가려 노력한다. 세상이 온통 독설의 마력에 빠져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사전적 의미를 뒤로 하고서라도 독설은 '양날의 칼'과 같다. 때로는 상대방에 꼭 필요한 자극제가 되고 발전의 계기가 되지만, 참을 수 없는 불쾌감과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 칼끝이 사회의 부조리가 아닌 사람을 향해 있을 때 그것은 더 위험하다.
독설에는 가시가 돋쳐있다. 생선 가시보다 억세고 올무보다 더 질겨 상대방의 마음을 요란하게 들쑤시고 언제 아물지 모를 생채기를 낸다. 설사 그 모든 것이 사실에 근거한 타당성 있는 비판과 지적일 지라도 쓰라리긴 매 한가지다. 독설은 악성 바이러스이기도 하다. 인터넷상에서 악플이라는 이름으로 번져나가 지금도 누군가에게 '최악의 선택'을 부추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지중지 하던 손주의 목에 옆전이 걸려 사색이 된 대감 면전에서 “여보시오, 대감! 대감은 수십년 동안 수백만냥을 꿀꺽 하시고도 여태 아무런 탈이 없었잖소, 그런데 뭐가 걱정이오”라며 통렬한 비판을 날리던 조선시대 풍자시인 정수동이 되지 못할 바엔 독설하기를 과감히 포기하자. 풍요로운 지식과 식견으로 상대방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자신이 없거든 섣불리 흉내 내려 하지도 말자.
대신 오늘 하루만이라도 황희 정승의 일화속에 나오는 '소 부리는 농부'가 되어보자. 무례하고 설익은 언어의 기술로 상대방을 할퀴고 아프게 하기보다는 칭찬과 희망의 말을 전해보자. 내 이웃의 가슴속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할 '언어의 씨앗'을 뿌려보자.
/황미란·편집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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