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인성 한밭대 겸임교수 |
요즈음의 세상풍경을 한마디로 그려 보자면 '자포자기(自暴自棄)'라는 말을 선뜻 떠올리게 된다. 이 말은 맹자에 나오는 말이다. 대개의 한자어의 조합이 그렇듯이 이 말에도 두가지의 자의가 합쳐져 있다. '자포(自暴)'란 마음을 스스로 버린다는 뜻이다. 제 스스로 어리석고 못났다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심리적 비하행위를 말한다. 자포한 자는 마음에 병이 든 것이다. 모든 절망은 심상(心傷)으로부터 오고, 절망은 삶에 대한 분노로 발전한다. 자포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에 힘을 키워 놓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을 곱게 잘 써야 한다. 마음을 함부로 쓰거나 잘 못 쓰다 보면 마음이 다치고 이로 인하여 마음에 병이 나기 마련이다. 제일 크고 무서운 병은 마음의 병이다.
'자기(自棄)'란 몸이나 행위를 스스로 버린다는 뜻이다. 자기가 자신을 쓸모없다고 업신여기는 자세를 말한다. 자기한 자는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제멋대로 폄하하고 경시하여 스스로를 무능화하고 무력화한다. 자기한 자의 일반적 특징은 일단 몸을 함부로 다루고 나아가 체면이나 명예가 손상되는 것을 괘념치 않는다. 심지어 제 이름에 먹칠을 하는 등 부끄러운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몸을 자해하기까지 한다. 이같은 자기의 위해행위는 점차 도덕이나 규율을 무시하는 행위를 야기하고 나아가 사회와 타인에 대한 반항과 경멸로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포기(暴棄)'의 행위는 자기를 기만하고 배임하는 행위다. '自暴'가 자기로부터 자신을 버리는 것이라면 '自棄'는 남으로부터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자포'가 마음을 잘못 쓰는 것이라면 '자기'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다. '포기'란 내 마음이 버린 것을 내 몸으로 다시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포기란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멸시하는 행위인 셈이다.
'자기'는 '자포'로부터 기인한다. 자포가 깊어지면 자기로 이어지는 것이 순서다. 이미 몸과 마음이 따로가 아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이내 몸도 무너지고, 몸이 무너지면 삶도 덩달아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사는 내내 격는다. 이런 이치로 보면 항상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는 일은 곧 신체의 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꾀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게 무슨 일이든 간에 포기를 쉬이 해서는 안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살은 자포자기의 극단화된 전형이다. 살펴보면 자살의 원인에는 자신을 비롯한 사람에 대한 상처와 세상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다. 포기한 자일수록 주변의 도움과 격려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자신을 비난하고 불신하는데 누가 믿고 격려해 주겠는가. 이런 뜻이 있어서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도 돕는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포기한 이들만큼 고독하고 힘든 사람도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여기다. 그들에게 우리가 하늘이 되어야 한다. 하늘의 몫으로서 도와야 한다. 왜냐면 이러한 자포자기의 상황은 남 일이 아니라 언제 우리에게 찾아올 줄 모르는 내 일이기도 하기때문이다. 그렇다. 아픔은 아프게 해야 낫는다. 아프지 않고 낫는 병은 없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인생이 아픈 것인 지도 모른다. '고종명(考終命)' 타고 난 명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 오복(五福) 중의 하나라는 이 말의 속뜻을 요즘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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