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권 법무법인 내일 변호사 |
IMF외환위기 이전의 우리사회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 내부에 경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지금과 같이 치명적인 경쟁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그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면서, 그 안에서 동료직원들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나아가 어느 정도 연공서열에 따라 체계화된 기업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외부와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기업에서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연공서열을 깨면서까지 성과급을 받기는 쉽지 않았고, 임금인상은 직급상승에 따른 보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따라 조직이 지극히 관료주의화 되어 능력보다는 속칭 '줄을 잘서야 한다.'는 출세론이 득세한 것이 사실이나, 이와 같은 유교주의적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를 경제적으로 몇 단계 상승시킨 역할을 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다소 편안한 경쟁을 추구하였던 가치가 IMF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사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적'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고, 과거의 가치를 지지하는 사람은 시대의 역적으로까지 몰리기도 하였다. 기업들은 기존의 연공서열을 철저히 붕괴시키고, 조직내부에서 조차 철저한 성과주의와 그에 따른 보상체계를 수립하였고, 구성원이 기업에 기여하는 바가 없으면 정년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는 살벌한 전쟁터를 구현하면서 '경쟁의 미학'을 선포하였다.
흔히 자본주의의 경쟁모습에 대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Winner takes all'을 외치는 미국식 자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Winner takes some'을 가치로 하는 유럽식 자본주의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에서는 강력한 경쟁을 허용하고, 그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전리품을 모두 취하며, 반면 패배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채 승자가 세금으로 내어 놓은 전리품 일부를 취할 수 있을 뿐이다. 전쟁터에 참여한 전사는 항상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전투에서 승리할 경우 생존뿐만 아니라 굉장한 전리품이 그에게 안겨지나, 패배하면 그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마치 로마시대의 검투사들의 게임과 다를 게 없다. 게임에서 승리한 검투사는 삶과 함께 무한의 향락이 주어지나, 생사를 건 다음 게임을 걱정해야 하므로 승리에 도취할 여유가 없이 새로운 생존게임을 준비해야 한다.
반면 유럽식 자본주의에서는 전쟁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승자에게 모든 것이 돌아가지 않고, 패자에게도 일정 부분의 전리품이 나누어져서 그에게 숨 쉴 여유 공간이 주어진다. 경쟁을 하되 뒤를 돌아보면서 경쟁을 할 수 있고, 나와 맞서는 상대방은 적이면서 동시에 게임의 동료로 인정되는 자본주의인 것이다.
IMF이후 우리도 모르게 로마검투사의 게임법칙이 우리사회를 장악한 듯하다. 그 속에서 '황의 법칙'이 등장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우리가 IT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은 경쟁의 피로감에 지쳐 행복이라는 가치를 잊어버렸다. 경쟁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사회가 되었기에 카이스트 학생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있었을 것이다. 경쟁은 행복추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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