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기정 금강문화유산연구원장 |
얼마 전 필자가 속한 연구원에서도 이 사업의 하나로 부여 백제역사재현단지 내 문화재 발굴조사 현장에서 전국의 초·중·고교 문화유산교육 으뜸학교 교사와 방문교육 주관단체 교사들을 대상으로 고고학체험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행사에 참여한 교사들은 문화유산 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문화유산에 대한 이론교육과 현장답사, 체험교육 등을 지도하는 분들이다. 이렇게 전문적인 지식과 열정을 가진 분들이기에 행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혹여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준비가 미흡하지나 않을지 많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참여 교사들의 높은 열의와 호응도 덕분에 행사가 원만히 진행되었음은 물론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교사들의 높은 열의의 이면에는 최근 교육현장의 변화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올해 교육과학기술부의 6대 중점 추진과제 중 첫 번째가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창의·인성교육 확산이며, 그 구체적인 추진방향 중 하나가 창의적 체험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동아리나 봉사활동, 다양한 예술·체육·과학 체험프로그램 등에서 활동한 내용을 창의적 체험활동 종합지원시스템(Edupot)에 기록하고, 이를 상급학교 진학에 활용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정책 변화의 중심에서 학생들을 적절히 지도해야 하는 일선 현장의 교사들은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학생들에게 보다 도움이 되는 체험활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체험현장을 직접 경험하여 실질적이고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말을 마다하고 애쓰고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유산 교육과 관련해 올해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가 있었는데, 그동안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으로 배우던 한국사가 내년부터 필수과목이 된다. 교육 내용도 지루한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탐구·체험·토론방식으로 이루어지고, 교과서도 전면 개편하는 등 학생들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할 방침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역사교육은 이제 교실에서만 이루어질 수 없게 됐으면, 교과서의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또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문화유산 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직접적인 체험지식이 필요하게 됐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따라 문화유산의 활용에 대해서도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때임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문화유산 활용 정책은 문화재를 지정·관리하고, 발굴된 문화재를 보존하여 전시 및 교육자료로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주5일제의 시행에 따른 여가의 확대와 교육현장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단지 문화유산을 보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여 체험함으로써 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우리의 문화유산과 우리 역사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고고학체험교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앞서 설명한 교육현장의 변화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가장 적합한 문화유산이 바로 필자가 늘 서 있던 발굴조사 현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문화재 발굴조사는 개발을 지연하게 하는 최대의 장애물로 인식되기도 하고, 일정 기간의 조사가 진행되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잊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 조사 일정의 일부분을 할애해서 살아 있는 우리 역사의 교육현장으로써, 문화유산의 실질적인 체험 현장으로써 활용한다면 이론이 아닌 가슴으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소중함과 자긍심을 느끼게 될 것이며, 문화재 조사기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높아질 것이다.
문화재청에서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겠지만, 현장에서 피부로 느낀 변화의 무게와 속도는 좀 더 빠른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시범적으로 시행된 사업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문화유산 체험 프로그램들이 문화재청의 중점사업으로서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동안 문화재 발굴현장에서 조사와 연구에만 집중했던 조사연구기관들도 문화유산 활용 및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앞장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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