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전 대전지방변호사회장 |
갓 나온 이파리를 보라. 비칠 듯 투명한 연두 빛이 빛난다. 산 가득히 아카시아 향이 퍼진다. 동녘 하늘 붉게 떠오른 해의 맑은 빛도 가득하다. 부지런한 새들의 울음소리, 상쾌한 대기 그리고 그 속으로 우리는 걷고 산에 오르는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왜 우리는 산에 오르는 것일까?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어떤 분은 말했다. 그렇지만 산에 오르는 것은 다시 그 산에서 내려오기 위함이 아닐까? 정상에 오르면 결국 내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름이나 내려옴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저 오르려고 만 애를 쓰는 것 같다. 남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야 하고 정상에 오르면 내려올 줄을 모르는 것이다. 정말 내려올 줄 아는 사람, 내려올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들어 등산이 유행처럼 번져간다고 한다. 분명 등산은 좋은 습관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을 위하여 꼭 필요한 두 가지, 즉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이 다 있는 곳이 바로 산인 것이다. 그 속에서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거기에다 산 속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즐기는 즐거움까지 덧붙이면 그 이상 좋은 운동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로 인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는 것이다. 건강을 위한 좋은 습관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등산에 따른 자연의 몸살 앓음과 같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매일 아침 동네 뒷산에 오르고 주말만 되면 전국 산을 찾아다닌다. 그런데 사람들은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남보다 앞서 산 정상에 오르고 싶어 한다. 사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이처럼 가능한 한 빨리 산에 오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무박 지리산 종주, 보만식계(보문산 +만인산 + 식장산 + 계족산)종주 등 등산 마니아들에게 있어서 도전의 끝은 없는 것이다.
등산을 시작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였지만 등산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덧 오로지 보다 많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 그것도 가장 빨리 오르는 것에 자랑스러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산에 오르는 것이 바로 건강해 지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이제는 산에 오르는 것 자체를 위하여 등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세상에는 이런 현상들이 많으며 오히려 대단히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가장 비슷한 예가 바로 돈이다. 돈은 인간이 살아가는 수단으로 역할이 주어졌고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어 생활을 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등산이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닌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듯이 돈도 삶의 수단이 아닌 돈 그 자체 목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공부라는 것도 이러한 현상의 하나로서 세상을 이해시키기 위하여 인간들에게 알려진 지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인데 이러한 공부가 오로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기준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현상은 바로 수단이 목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일까? 아직은 그에 대한 답변은 어렵다. 다만 이러한 현상 속에는 대단히 비인간적인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수단이 목적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바로 인간관계를 목적이 아닌 수단이나 대상으로 변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 진화라고 부르는 것의 현상이 바로 이처럼 수단이 목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도구화, 기계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등산의 맛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저 산에 오르려고만 하는 것이 등산이 아니라면, 산을 오를 때에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라. 나무들의 싱싱한 뻗어 오름이 있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반짝이는 햇빛이 있으며, 싱그러운 산의 향기가 온 몸을 감싸며 흐르는 시냇물 소리, 새들의 정겨운 지저귐이 있는 것이다.
산을 즐기며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흐르는 우리 이마의 땀이 등산의 참 맛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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