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영 前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
요즈음 K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주말 사극에서 주인공 근초고왕이 한 말입니다. 만주 벌판을 호령하며 백제를 정복하려고 틈을 노리던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마침내 평양성 전투에서 패해 자신의 진지로 잡혀오자, 비록 적국의 수장이지만 정중히 대접하라며 근초고왕은 왕자들을 이렇게 훈계했습니다. 이런 말도 합니다. “군주는 신하와 공을 다투지 않는 법이다.” 그래야 신하들이 세상을 움직일 계책을 내고 장수들이 재량껏 공을 세운다는 가르침입니다. 비류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으나 궁중정치에서 진 뒤 객지를 떠돌며 소금을 팔던 부여구가 700년 백제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이만한 아량과 금도가 그 바탕이 됐겠지요.
대단원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대하드라마 '근초고왕'을 볼 때마다, 나는 아직도 한두 가지 개운치 않은 의문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협찬기관입니다. 이처럼 지역색 짙은 드라마를 찍는데, 왜 충청권 지자체들은 모른 체하고 있을까. 지역의 홍보를 위해서든, 상품의 마케팅을 위해서든 이렇게 좋은 기회도 흔치 않을 텐데.
근초고왕 후속 작품으로는 고구려 최고의 군주인 광개토왕이 선정됐다는군요. 3국의 전성기를 모두 다룬다면, 그다음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한반도 통일시대를 연 신라의 문무왕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시기가 묘하지 않습니까.
대하 역사극은 60부작이 보통이니까 광개토왕은 내년 초 총선을 앞두고 끝나게 됩니다. 각 당에서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후보자를 뽑을 때쯤은 통일신라가 다루어질 모양입니다.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KBS가 의도했든 안 했든, 국민들의 투표행태나 의사결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미묘한 주제가 미묘한 시기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요.
왜 정부 프로젝트를 놓고는 사생결단식의 쟁투를 벌이면서, 이런 결정적인 문화코드에는 관심이 없을까요. 과학벨트나 신공항 건설과 같은 눈에 보이는 사업에는 전국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열과 갈등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지역색 짙고 정치색 짙은 문화 캠페인에는 왜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을까요.
21세기는 단연코 문화의 시대입니다. 문화는 국가발전의 중심축이자,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세계는 지금 치열한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놓고 5대양 6대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기투표입니다. 동북아에서는 제주가 유일하게 본선에 올라가 있는, 바로 그 글로벌 콘테스트지요.
일부 진보적인 언론은 그 행사를 주관하는 스위스 비영리단체가 UN의 공인을 받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비판을 가하기도 하는데, 국제축구연맹(FIFA)을 보십시오. 회장이 나서서 개최지를 다시 선정할 용의가 있다고 시인할 만큼 집행위원들의 비리와 협잡이 끊이지 않지만,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로서 월드컵이 가지는 가치나 명성, 그리고 그 상품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일본이 영산이라고 내세우는 후지산은 물론이고 땅덩어리 넓은 중국에서도 한 군데 진출한 곳이 없는데, 제주만이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본선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것도 정부의 도움 없이 당당하게 자력으로 이룩한 쾌거입니다. 오래전부터 정부와 재계가 한 덩어리가 돼서 평창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제주 7대 자연경관 선정은 그런 일과성 행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효과가 큰 대한민국의 문화·관광 자산입니다.
이제 마지막 고비입니다. 이 일을 우리가 해내야 합니다. 만일 제주가 세계의 자연경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7곳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다면, 대를 물려가며 삼천리 방방곡곡 그 혜택이 골고루 미칠 것입니다.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001-1588-7715를 누르고 나서 안내멘트에 따라 제주 코드인 7715를 누르십시오. 한번에 130원가량 든다니까, 11월 11일 발표할 때까지 매일 한 번씩 전화를 하더라도 2만 원 정도면 됩니다. 하루 단돈 100원으로 애국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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