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전 CBS상무, 중문노인복지센터장 |
얼마 후 육지의 동물,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를 총괄하는 황제를 뽑기로 했다. 육·해·공의 대표들이 모여서 논의를 시작했다. 각 대표들은 자기들의 왕이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십 차례 회의와 격렬한 토론 끝에 '오리'를 황제로 추대하기로 했다고 한다. 육지에서도 살고, 물에서도 살며, 공중을 날 수도 있어 육·해·공 모두와 연고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고, 연고주의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 같아 통쾌하기도 하다.
연고주의는 혈연·지연 ·학연 등 일차 집단적 연고를 다른 사회적 관계보다 중요시하고, 이런 행동양식을 다른 사회관계에까지 확장하는 문화로 이 연고주의를 나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고 또 21세기는 네트워크 사회이기에 다양한 사회계층과 직업을 가진 구성원들이 상호간의 높은 신뢰와 결속력을 바탕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상부상조를 통해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이를 자신과 사회의 발전에 활용한다면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기업 마케팅에서 연고주의에 의한 판매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사례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문제는 이 연고주의가 올바로 사용되지 못하는 경우다. 우리사회는 이 연고주의가 심각한 골칫거리다. 사회 전반에 걸쳐 학연, 지연, 혈연 등 무언가 인연이 있어야 소위 '플러스알파'라는 것을 얻을 수 있고, 그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은 출세하기가 힘들다는 사고가 만연돼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역대 정권을 보아도 인재 등용에 있어 출신지역이 많이 배려되었으며, 특히 MB정부 들어서는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져 출신학교, 출신지역, 심지어는 출석교회라는 연고라도 있어야 국가인재로 등용될 수 있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법조계에서도 판·검사와의 연고에 의한 변호사 선임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고, 최근 서민들에게 피눈물을 안겨준 부산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도 대주주와 은행장, 감사까지 모두 같은 지역, 같은 고교 선후배라 이들 사이에서 불법대출과 탈법투자가 쉽게 이루어졌다는 사실 등은 연고주의의 폐해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로 빨리 바뀌어야 한다. 학연이나 지연보다는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좋은 사례를 한국 축구에서 찾을 수 있다. 역대 국가대표 축구 감독들이 학연, 지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히딩크' 감독은 과감하게 오직 실력으로만 선수를 선발하여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지 않았는가.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예술, 체육 등 모든 분야에서 꿈이 있는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학연이나 지연보다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 선택되는 사회가 될 때 공정사회는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부분개각의 일부 인선을 보면서 아직도 연고가 있는 인재만을 고집할 경우 사자도 고래도 독수리도 다 놓치고 오리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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