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이 호랑이띠(37세) 프랑스 작가가 인용한 말들에 딱 어울리는 가수가 바로 토끼띠(48세) 가수 임재범이다. 그는 “호랑이를 기억해 달라”며 '나는 가수다'(나가수) 무대를 기약 없이 떠났다. 돌아오든 안 오든 도도한 임재범류를 형성했다. 그의 '여러분'에서 어디가 울음이고 어디가 노래인지 알지 못한다. '새(鳥)'를 '새'로 부르는 순간, 새의 발랄한 개체성과 노래마저 말살한다 하듯이, 그걸 구분하다 노래를 상실할 수 있다.
자기 노래를 임재범을 통해 들은 윤복희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고 했다. 임재범의 나가수 출연 동영상은 1100만 번 이상 클릭됐다. 국민 넷 중 한 명 꼴이다. 그 절창은 신체감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들로 대체하지 않으면 부당하다. 우선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가책이나 슬픔을 느낀다). 코끝이 찡해진다(=슬픔이 복받친다). 인생의 체증이 가신다(=짐스러움을 털고 속이 후련하다). 가슴이 뜨거워진다(=감동으로 벅차다).
그 같은 폭발적인 호응은 물론 가수 혼자 이룬 게 아니다. 사람들이 슬펐고 외로웠고 괴로웠기에 가능했다. 임재범의 세월, 박정현·김범수·김현정(BMK)·윤도현·김연우·이소라의 세월처럼 누구에게나 속내를 털어놓지 못할 사연이 있다. 어떤 시, 어떤 노래로도 대신 못할 인생이 있다. 거울 앞에서 동작을 따라하듯 꼼짝없이 '미러링(mirroring)'이 된 것일 뿐. 힘들 때 누구에겐가 위로받길 원하는 우리와 나가수 가수는 다르지 않고 동격이다.
그러나 동격이면서 소름 돋는 감정의 호흡으로 우리가 한참을 방치해둔 환상이라는 근육, 감정의 근육을 단련시킨다. 그들의 노래에 잠시 말문이 닫히고 업 중에서 무서운 구업(口業)도 잊는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양설(兩舌), 남을 속이는 망어(妄語), 잡스럽고 겉과 속이 다른 기어(奇語)에서 잠깐이나마 떠나 있게 하는 것이다.
굴곡진 인생을 승화한 도전자들, “별 굴곡 없이 살아서 깊이 있게 음악 표현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깔끔한 퇴장자에게도 마음이 착 들러붙는, 고정시키는 힘(sticking power)이 있었다. 순위도 탈락도 무가치하다. 편곡, 퍼포먼스, 에너지 넘치는 재해석, 트로트의 재즈나 발라드로의 무한 변신― 그들은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나가수의 '정치학', 청중·시청자 '권력'을 누가 말하나. 임재범이 하차하고 누가 날 위로해주지? 옥주현과 JK 김동욱이 빈자리를 메우는 29일 방송을 기다리며 국민들은 입이 닳도록 말한다(=같은 말을 수도 없이 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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