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에서 여경섭은 먼지와 사진을 이용한 이전의 작업과는 매우 동떨어진 재료와 형식의 작업을 보여준다.
▲ Acouple and Garden |
그렇다고 앞선 먼지작업에서의 관심사나 사회, 외계에 대해 그가 작업을 통해 관계 맺는 방식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먼저 '종이투각'은 꼼꼼하고 세밀한 칼질로 오랜 시간 노동을 투여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여 작가는 핵심이 되는 모티프를 화면 전체에 드로잉한 후, 그것을 칼로 새겨 나간다.
새기는 과정 또한 단순히 윤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핵심 모티프를 장식하듯 다양한 형태의 꽃이나 잎, 줄기를 가진 식물형상을 윤곽선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화면 전체는 무수한 잎과 꽃, 줄기로 가득한 모습을 가지게 된다.
한편으로 모티프와 관련이 있는 사물이나 어떤 행위 중에 있는 인물들을 자그마하게 문양처럼 곳곳에 새겨 넣는다.
이에 따라 핵심 모티프는 결국 그 윤곽이 모호해지며, 식물과 작은 문양들을 이루는 윤곽들과 뒤섞이고 교차하여 화면에는 레이스 천처럼 가는 선들만이 남게 된다.
결국, 핵심 모티프도 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고, 작은 모티프들 또한 숨은 그림을 찾듯 주의를 기울여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화면을 그는 '나의 정원'이라 부르며,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곳에 이러저러한 이미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정원이다.
여기서 기본이 되는 핵심 모티프는 작가의 관점이나 사고를 반영하는 제작 당시의 관심사다.
문화적, 예술적, 혹은 사회·정치적으로 다중적인 의미를 가진 대상인 것이다.
▲ My Garden |
한편으로 그는, '평면 투각'에 등장하는 작은 이미지들과 유사한 형상을 역시 윤곽으로 새기고, 가늘고 길게 구불구불한 선으로 연결하여 쌍으로 늘어뜨린 설치작업을 보여준다.
이렇게 쌍을 이루는 이미지들은 그가 일상 속에서 그때그때 포착한 시사적인, 혹은 그의 생각을 상징하는 사물들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형상이 늘어선 공간 속에서, 관람객은 그의 정원에 초대된 손님처럼 작가의 관념과 사회에 대한 생각들 속을 거닐며 작가와 대화하듯 자신의 생각을 교환하며, 작품, 그러니까 이미지들과 자신만의 또 다른 관계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두 가지 형식의 작업을 캔버스 위로 옮겨 놓기도 한다.
정원을 가는 붓으로 직접 그리기도 하고, 두 개의 연결된 이미지를 새겨 붙이는 방식이다.
이는 그가 이제까지 다양한 조형방식, 즉 드로잉, 자연 속의 설치를 포함한 만들기와 깎기에 의한 입체작업, 그래픽 기법이 가미된 영상작업, 사진작업 등을 시도해온 것에서 확인하듯, 그때그때 다루어지는 작업의 주제와 조형형식에 내재한 또 다른 가능성이나 의미의 발굴을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함께 전시되는 두 점의 영상작업 또한, 여 작가가 걸어온 조형의 흔적과 자취를 확인하는 동시에, 다양한 형식을 통해 꾸준히 지속되고 제기되어 온 관심사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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