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곡선]개와 늑대의 시간

  • 오피니언
  • 청풍명월

[직선곡선]개와 늑대의 시간

  • 승인 2011-05-23 15:36
  • 신문게재 2011-05-24 21면
  • 고미선 편집팀장고미선 편집팀장
▲ 고미선 편집팀장
▲ 고미선 편집팀장
#1. 해질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어 윤곽이 흐려질 때,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저 그림자가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프랑스인들은 황혼의 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고 부른다.

믿었던 현실이 언젠가부터 친구인지 적인지, 정말 구분되지 않는다. 어쩌면 하루종일 개와 늑대의 시간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벌과 인맥, 혈연위주로 돌아가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벽. 태어나면서부터 줄 세워진 빈부격차의 불공정 경쟁. 서민의 아픔에 등 돌린 대통령과 정치인들.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에서의 탈출구가 필요한 순간, 비행기를 탔다.

#2. 나무 심기 봉사는 그저 허울뿐, 광활한 대륙의 초원에서 '칭기즈칸'처럼 말 달리고 싶은 바람뿐이다. 차갑도록 푸른 몽골의 창공이 '하늘이라고 다 같은 하늘은 아니다'라며 속삭이고, 때 묻지 않은 테렐지 국립공원 곳곳에서 웃어대는 희귀한 바위들 때문에 가슴이 먹먹하다.

오랜 상념과 열결된 길 끝에서 만난 사막엔 초원은 어디로 가고 모래바람 뿐일까. 매년 수천개의 호수가 사라지고 있는 땅, 계속되는 사막화에 초지들은 황폐화 되고 가축들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다.

우연히 조우한 '왕의남자' 이준익 감독은 나무를 심기위해 몽골을 방문했다고 말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무를 심을 것'이라며 활짝 웃는다.

#3. 사막화 핵심 지역인 불간 아이막 바양노르 솜을 방문해 나무를 심는다. 삽으로 깊게 판 땅에 묘목을 조심스레 묻고 끙끙거리며 양동이로 물을 담아 붓는다.

문득 일손이 없어 잡초가 무성한 고향 시골 밭이 떠오른다. 감나무도 자두나무도 잘 자라고 있을까. 유실수를 잔뜩 선물 받고도 그냥 버렸던 지난 식목일의 기억이 떠올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하루종일 불안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하늘 길, 기상악화와 제트기류로 비행기는 심하게 요동치지만 머리는 맑고 편안하다. 생명의 빛이 밝아오는 동쪽을 날아서…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불문학자의 글에서 읽은 건데 불란서 사람들은 해질 무렵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한대. …섬뜩한 시간이라는 뜻이라나 봐. 나는 그 반대야. 낯설고 적대적이던 사물들이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친숙해지는 게 바로 이 시간이야.' -박완서 '아주 오래된 농담中'

/고미선·편집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