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비안의 해적4:낯선 조류 |
그런데 언제부터 '캐리비안의 해적'이 잭 스패로우 선장의 1인극이 됐지? 앙상블 드라마가 아니었나? 조니 뎁의 스패로우가 시리즈의 얼굴인 건 맞다. 기괴하고 엉뚱하고 능글능글한 이 안티히어로는 그 자체로 매력덩어리지만 시리즈의 성공은 그의 개인기가 전부는 아니다. 진지한 윌 터너(올랜도 블롬), 씩씩한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이 어우러질 때 전진할 동력이 솟구쳤다. 스리 톱이 때론 협력하고 때론 배신하는 예측 불허의 상황이 시리즈의 활력이자 매력이었다.
이번 '젊음의 샘'을 향한 네 번째 항해엔 윌과 엘리자베스는 없다. 이들이 빠진 자리는 시리즈 내내 스패로우와 티격태격 거렸던 바르보사(제프리 러시)와 새 얼굴로 섹시한 해적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가 메운다. 반 괴물 반 인간의 얼굴의 데비 존스가 사라진 악당 자리는 좀비를 부리는 '앤 여왕호의 복수'호의 선장 '검은 수염'(이안 맥쉐인)이 등장한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안젤리카나 사악한 영혼의 검은 수염은 흥미롭고 독특한 캐릭터이긴 하나 문제는 이들이 앙상블을 이루느냐는 거다. 아쉽게도 이들은 따로 논다. 스패로우의 고군분투는 안쓰럽고 명품 조연들의 부재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 스패로우에게 필요한 건 3D도 젊음을 되찾아주는 샘도 아니고 함께 뛰어놀 캐릭터다.
볼거리만 보자면 여전히 풍성하다. 런던 시내를 가로지르는 마차 추격신이나, 절벽 끝에 매달린 해적선에서 스패로우와 바르보사가 시소 타듯 벌이는 액션 신은 블록버스터다운 즐거움을 준다. 착한 얼굴로 선원들을 유혹하다가 순간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드는 인어 떼의 습격은 강렬하다. 거대한 칼이 달려드는 3D의 '팝업' 효과도 가슴 서늘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거의 그것, 딱 그만큼이다. 4년을 기다린 팬들을 충족시키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모험의 크기와 스케일, 재기 넘치는 캐릭터의 향연이 확 줄어든 탓이다.
스패로우의 모함 '블랙 펄'은 검은 수염에 의해 술병에 갇혔다. 하지만 갇힌 건 배뿐만이 아니다. 스패로우는 말했다.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가고, 그게 배라는 거거든…, 하지만 배가 무엇인가 하면, 블랙 펄이 뭔가 하면, 그건 바로 자유야.” 틀에 박힌 재미, 옛 것을 재탕하는 상상력이 아니라 전복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 달라는 거다. 그게 해적답지 않은가.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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