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택 금산문화원장, 연세소아과병원장 |
에코뮤지엄이란 마치 박물관에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관람객이 돌아다니며 그 유물을 관찰하듯이 지역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설정 하에 방문객들이 그 지역의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들을 찾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들이 다니는 길이 박물관의 회랑이 될 것이고, 지역이 자랑하는 명소는 수천 년 된 유물과 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일견 간단한 발상 같지만 이 프로젝트를 실천하려면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집안에 손님을 초대하려면 먼지 떨어내고 바닥 청소하는 대청소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청소를 했다고 해서 집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집안은 평소보다 반짝거릴 것이다. 에코뮤지엄의 개념을 지역 발전에 도입한다면 그 지역은 청결하고 멋진 모습을 유지하면서 지역발전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방대한 프로젝트를 시도해야 했기에 몇 사람의 생각만으로는 실천이 힘들었던 한계도 있어서 결국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최교수의 훌륭한 마인드와 에코뮤지엄에 대한 열정과 금산을 향한 사랑을 생각하면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최교수에게 큰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았다.
몇 달 전부터 금산의 역사와 문화와 멋진 경치를 담은 명품 길을 만들자는 논의가 금산문화원 내에서 있었다. 금산이 금수강산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얘기이지만 정작 그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고 내세울 수 있는 명품 길은 없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고 수저가 없으면 맛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금산역사문화연구소에서 그 책임을 담당하기로 했고, 우연히 이 얘기를 전해들은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주었다. 박동철 금산군수와 김복만 금산군의회 의장은 '너무 좋은 생각을 했다'면서 자신들이 더 좋아하고 도와주었다.
그 길의 이름은 '술래길'이라고 정했다. 술래잡기의 그 술래다. 감추어져 있는 것은 귀한 것이고, 숨은 술래를 찾으면 귀하기에 잘 보존하고 또 발전시키면서 즐길 수 있는 대상인 명품길이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여러 개의 술래길을 만든다면 시작이 힘들고 늦어질 뿐만 아니라 귀한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우선 하나의 명품길만 만들기로 했다. 첫 번째 길은 금성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금산 사람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길이다. 438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산이라 오르기 쉬울 뿐 아니라 주변 경관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전부터 성곽이 있던 방어의 요충이자 격전지였다고 믿어진다.
내친 김에 정상에는 금산에 있는 20여 개의 성을 표시한 지도도 세워 놓았다. 금산이 삼국시대에는 백제군의 DMZ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부 지역은 신라군의 최전방이었단 곳도 있다. 무릇 편가름이란 것이 시간의 강물을 타면 아무 의미 없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금성산 술래길' 명명식이 지난 14일에 있었다. 많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보령문화연구소 회원 수십 명이 함께 해주어서 더욱 빛이 났다.
앞으로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를 배출한 지역으로서 '순교의 길'이라든가 동학 최초의 기포자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되새기는 '동학의 길', 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행적을 따라가 보는 '침략의 길'과 같은 술래길들을 찾아내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이제야 최효승 교수에게 진 마음의 빚을 1% 정도 갚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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