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한호]민주사회에서의 전체주의적 사고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도한호]민주사회에서의 전체주의적 사고

[목요세평]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 승인 2011-05-18 13:52
  • 신문게재 2011-05-19 20면
  •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대학들이 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호봉제 급여를 연봉제로 바꾸었다. 시행단계에서 신임교원부터 단계적으로 연봉제를 실시한 대학이 많았다. 연봉제 급여를 받는 교원에게는 성과급이 제공되었고 총액으로 볼 때는 호봉제와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효도 휴가비나 상여금이 지급되는 달에는 연봉제 교직원들이 자신들에게도 효도비를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연봉제 교원과의 급여 차이를 불공평한 처사라고 항의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불평과 항의는 자신의 연봉은 자신이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는 자본주의의 원칙을 모르는 데서 발생한 소치일 것이다. 같은 해 입학한 학생은 꼭 함께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이와 같다 하겠다. 학생들은, 재학 중이라도 어학연수나 가사 돕기, 여행 등을 위해 언제든지 휴학하고 자신을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간에 갈등을 야기 시키며 온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무상급식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경제원리가 자본주의이며 우리 사회는 이 자본주의의 자율적 경제 체계 아래에서 발전해왔고 유지되고 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좋은 옷을 사 입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값싼 옷을 입는다. 국민이 모두 꼭 같은 옷을 입고 꼭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일 것이다.

무상급식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나, 한국에서 생활수준이 비교적으로 높은 서울 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실시한다는 데는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필자는 달포 전에 명동에 위치한 한 장학회를 방문했다가 그 장학회 회장으로부터 동대문구에 소재한 한 기술학교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학회 관계자들은 장학금을 지원할 양으로 학교를 방문했으나 가서 보니 끼니를 잇지 못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나 되어서 장학금 대신 일정부분의 식사비를 제공하기로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서울은 크고 생활수준도 다양해서 동쪽의 한 학교 학생들이 굶주려도 서쪽이나 남쪽 지역의 다른 학생들은 그들을 도울 수도 있다. 국가적 지원과 혜택은 먼저 합리적 방법으로 예산이 확보되고 그 확보된 예산으로 사회적 약자와 유공자 또는 그것이 없이는 살기 어려운 이들에게 차등 지급되어야지 모든 개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전 지역에서 일괄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은 이유 없는 선심이며 설혹 객관적 여건이 조성 되었다 해도 불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시 도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제공하려는 자치단체는 먼저 그것을 요청하는 지역이나 학교 또는 학생들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할 방법부터 찾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며 이 신뢰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시민 간의 믿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중앙 정부나 공공기관과의 신뢰를 쌓지 못한 단계에서 성급하게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기 개발이 전혀 불가능한 자연녹지가 있다. 인근 주민이 여러 차례 토지 매입과 개발 허가를 신청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 베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무성하던 소나무 숲이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소문에는 몇 대학 건축학과 교수들로 무슨 컨소시엄이 구성 되어 곧 고급 주택 단지가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인접 지역 주민들에게 의견수렴이나 예고도 없이 남은 소나무를 베어내더니 건축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시민들이 이런 과정을 보고서도 냉소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신뢰가 무너지는 현장이다. 이것은 어느 특정 지역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 도처에서 때때로 발생하는 하나의 '불신 패턴'과 같은 것이다.

민주사회의 근간이 자율성과 신뢰일진대 우리 사회는 아직 그 어느 것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름다운 강산과 복지사회도 좋지만 신뢰회복이 우선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외출제한 명령 위반하고 오토바이 훔친 비행청소년 소년원행
  2. 상명대, 제25회 대한민국 반도체설계대전 'SK하이닉스상' 수상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제15회 시가 익어가는 마을 'ON마을축제'
  4. 충남대병원, 만성폐쇄성폐질환 적정성 평가 1등급
  5. 한국건강관리협회, 창립 60주년 6㎞ 걷기대회 개최
  1. 서구 소외계층 60가정에 밑반찬 봉사
  2. [날씨] 단풍 절정 앞두고 이번 주말 따뜻한 날씨 이어져
  3. 대전 노은지구대, 공동체 치안 위해 '찾아가는 간담회' 실시
  4. 샛별재가노인복지센터 생태로운 가을 나들이
  5.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헤드라인 뉴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 대전에 집결한다

내년 8월 국내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전에 집결한다. 대전시는 '2025년 중소기업융합대전'개최지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올해 행사에서 대회기를 이양받았다. 내년 대회는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 '중소기업융합대전'은 중소기업융합중앙회 주관으로 중소기업인들 간 업종 경계를 넘어 교류하는 것이 목적이다. 분야별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역별 순회하는 화합 행사 성격도 띠고 있다. 2004년 중소기업 한마음대회로 시작해 2014년 정부 행사로 격상되었으며 2019년부터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