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한호 침례신학대 총장 |
생각해보면, 이런 불평과 항의는 자신의 연봉은 자신이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는 자본주의의 원칙을 모르는 데서 발생한 소치일 것이다. 같은 해 입학한 학생은 꼭 함께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이와 같다 하겠다. 학생들은, 재학 중이라도 어학연수나 가사 돕기, 여행 등을 위해 언제든지 휴학하고 자신을 위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간에 갈등을 야기 시키며 온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무상급식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경제원리가 자본주의이며 우리 사회는 이 자본주의의 자율적 경제 체계 아래에서 발전해왔고 유지되고 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좋은 옷을 사 입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값싼 옷을 입는다. 국민이 모두 꼭 같은 옷을 입고 꼭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사고일 것이다.
무상급식이 끼니를 잇지 못하는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면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나, 한국에서 생활수준이 비교적으로 높은 서울 지역에서 일률적으로 실시한다는 데는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필자는 달포 전에 명동에 위치한 한 장학회를 방문했다가 그 장학회 회장으로부터 동대문구에 소재한 한 기술학교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었다. 장학회 관계자들은 장학금을 지원할 양으로 학교를 방문했으나 가서 보니 끼니를 잇지 못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나 되어서 장학금 대신 일정부분의 식사비를 제공하기로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서울은 크고 생활수준도 다양해서 동쪽의 한 학교 학생들이 굶주려도 서쪽이나 남쪽 지역의 다른 학생들은 그들을 도울 수도 있다. 국가적 지원과 혜택은 먼저 합리적 방법으로 예산이 확보되고 그 확보된 예산으로 사회적 약자와 유공자 또는 그것이 없이는 살기 어려운 이들에게 차등 지급되어야지 모든 개인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전 지역에서 일괄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은 이유 없는 선심이며 설혹 객관적 여건이 조성 되었다 해도 불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시 도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제공하려는 자치단체는 먼저 그것을 요청하는 지역이나 학교 또는 학생들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할 방법부터 찾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민주주의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며 이 신뢰는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시민 간의 믿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국민들이 중앙 정부나 공공기관과의 신뢰를 쌓지 못한 단계에서 성급하게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여기 개발이 전혀 불가능한 자연녹지가 있다. 인근 주민이 여러 차례 토지 매입과 개발 허가를 신청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 베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무성하던 소나무 숲이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소문에는 몇 대학 건축학과 교수들로 무슨 컨소시엄이 구성 되어 곧 고급 주택 단지가 조성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인접 지역 주민들에게 의견수렴이나 예고도 없이 남은 소나무를 베어내더니 건축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시민들이 이런 과정을 보고서도 냉소해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신뢰가 무너지는 현장이다. 이것은 어느 특정 지역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 도처에서 때때로 발생하는 하나의 '불신 패턴'과 같은 것이다.
민주사회의 근간이 자율성과 신뢰일진대 우리 사회는 아직 그 어느 것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름다운 강산과 복지사회도 좋지만 신뢰회복이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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