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혜 아산 충무초 교사 |
'원래 말을 안하기는! 쉬는 시간에 떠드는 것 내가 다 봤는데.'
쉬는 시간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며 웃는 모습을 분명 보았다. 몇 번이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민망했는지 입을 닫고 눈에 힘을 주며 웃던 눈이 들키지 않으려했다. '내가 너 원래 말 잘하는 것 알거든. 너 들켰으니깐 이제 그만 발표도 하고, 나와도 얘기 좀 해줘.' 눈빛을 보내지만, 같이 생활한지 한 달이 지난 4월에도 수업시간만 되면 책상 위에 올려진 왼쪽 팔목을 잡고 있는 오른쪽 손은 미동도 없다. 수업시간에 떠들고 장난하는 아이들보다 어쩌면 나는 바른 자세로 앉아 바르게 수업을 듣기는 하나 말이 없는 그 아이가 더 신경 쓰였다.
'짧은 경력이지만 나 나름대로 비법이 있거든. 내가 너를 꼭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발표하는 학생으로 만들거야.' 선생님으로서 마땅히 맡고 있는 학생을 바르게 지도해야한다는 표면 밑에는 '어디 두고보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가 깔려 있었다.
그간 쌓은 비법 하나. 아이와의 일대 일 대화를 통해 친밀감 높이기였다. 점심시간에 급식판을 들고 아이 옆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이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하지만 나의 목표가 된 아이 옆에 앉아 말을 걸어본다. “맛있지? 많이 먹어.” 수업 시간과 마찬가지로 눈은 맞춰주는 것이 나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였다. 그럴수록 대답을 강요하는 말을 계속 쏟아 부었다. 나만큼이나 그 아이도 더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다.
또 다른 비법, 일기장에 댓글을 통한 마음 열기였다. 아이가 일기를 열 줄 쓰면 나는 사랑을 담아 열 줄 이상을 써 주었다. 다음날에는 나의 댓글과 관련된 내용의 일기를 기대하며, 일기로나마 대화를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이는 나의 댓글은 읽기는 한건지, 자기의 일상과 느낌만 적었다.
이후 가지고 있는 비법을 한꺼번에 다 꺼냈다. 목표를 정한 나는 포기를 모르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다른 반으로 심부름 다녀오기, 작은 선물하기, 휴대폰 문자와 이메일 보내기 등의 비법을 시도했다. 조금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분명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 혼자 믿으면서도, 이번에는 강력한 적을 만난 느낌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분명 그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진짜 비법을 내가 가지고 있으니 꺼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변함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왜 말을 안한데?”
발명대회 준비 때문에 남아있는 6학년 아이 반에 우리반과 같은 아이가 있다. 속으로는 너희 담임선생님도 참 답답하겠다 말하며 나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 하는 질문이었다. “부담스럽대요. 말하기 싫은 것은 아닌데 담임선생님이 자꾸 말을 거는 것도, 자기가 말하면 담임선생님과 아이들이 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새로운 비법, 그냥 두기! 6학년 아이와의 대화 후 우리반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쏟아 부었던 비법들을 걷어들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이게 뭐야?” 수업 시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내게 치즈 소시지를 내밀었다. 수업시간에 맘에 드는 부분이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웃는 자기 모습에 움찔 놀라며 바로 손으로 입을 가리지만, 나와 눈이 마주쳐도 웃고 있는 눈을 감추진 않는다. 전체가 대답할 때는 이제 친구들의 큰소리에 자기의 작은 소리를 싣기도 한다.
교사라는 책임감을 앞세워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가지고 있는 비법을 동원하여 도우려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방법을 이용하면 분명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으니 더 열심히 노력하야지 하는 의욕만 앞섰다. 우리반 아이를 통해 나는 새로운 비법 하나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최고의 비법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을 쏟다보면 꽃이 활짝 필 수도, 때로는 그냥 두는 것이 더 알찬 열매를 맺을 수도 있듯이 또 다른 비법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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