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영 미술학 박사·평론가 |
당시 회원은 권영우, 박명규, 박봉춘, 신동주, 유근영 5명이었다. 이들은 '대전 구상 현장에 새로운 물결을 넣어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시를 시작했다.
즉 대전에서는 처음으로 추상 회화를 시작한 작가들인데, 이전에는 전통적인 방식의 구상 작품만 있었던 상황에서 추상작품을 하기 위한 연필, 붕대, 풀, 탁본 등을 이용한 새로운 미학은 대전 현대미술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추상작가들의 등장은 구상계열 작가들에게는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고 박명규는 말한다.
“당시 추상작업을 하다 보니 조금 있다가 구상작가 협회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르뽀 그룹을 보고 사실적 그림을 못 그리니 추상작업을 한다고 비난했죠. 그래서 추상작가가 사실적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홍명갤러리에서 '추상작가 구상전'을 열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후에 이러한 분위기론 안 되겠다 싶어 점점 인원을 보충하게 되었죠. 그런데 아무리 해도 단합이 잘 안되어서 15회를 맞아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추상작가 구상전을 열었던 현실로 짐작해 보건대 대전에서는 기하학적이거나 추상적 논리로 작품을 받아들일 이론과 감각이 미흡한 곳이었고, 르뽀 그룹이 창립되기 이전 1973년 10월 8일 홍익대 동문들인 20~30대 청년 작가들로 구성된 비구상계열 '서양화 12인전'이 열렸던 일이 있다.
당시 충남일보 기사를 보면 비구상 작품에 대한 평은 전혀 없으며 단지 작가들의 경력만 화려하게 펼쳐놓은 점으로 보아 추상은 생소하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10월 들어 대전 산강화랑은 계속 전시가 밀리고 있다. 8일부터 12일까지는 서울과 대전 지방 화가전이 열리고 있다. 특색은 모두가 홍대 미술과를 졸업했으며, 작품은 모두가 비구상으로 작가들은 41년생부터 46년생까지로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젊은 작가들이다.”
'서양화 12인전' 출품작가는 권영우, 박명규, 박봉춘, 박석원, 박승범, 서승원, 송번수, 신동주, 이반, 이성태, 이승조, 최명영까지 12명이었다.
이중 권영우,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은 1964년 홍익대학교 14회 졸업생으로 뭉쳐진 오리진의 멤버들인데 '모든 고정관념에서 탈피, 새로운 세대에 의한 새로운 미의식의 구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피에트 몬드리안의 엄격성과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정신성에 접근하려 했던 작가군으로 '서양화 12인전'에 대거 포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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