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경 건양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 |
사과는 보통 10월 말이나 11월 늦가을에 가서야 수확을 한다. 5월의 연두빛 작고 어린 열매는 6~7월 지루한 장마를 이기고, 8월의 뜨거운 태양을 견딘 후, 9월의 모진 태풍까지 무사히 버텨내고서야 가을의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사과로서의 맛과 모양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떤 녀석들은 아직 여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한 쪽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사과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다른 친구들은 뜨거운 여름 태양을 견디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속으로 살을 찌우고 있는 동안, 겨우 어린애 주먹만 한 녀석들이 벌써 몸단장을 하고 사과가 다 된 양 모양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밑거름이 부족하여 영양이 좋지 않거나 병충해를 입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성장이 멈춰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그들은 농부의 손에 솎아지거나, 큰 태풍이라도 한 번 만나게 되면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나마 땅에 묻거나 그냥 버리기가 아까운 것들이 되어야 가마니에 담겨와 도시 변두리나 시골장터의 멍석 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1000원에 다섯 개 하는 '가마니 사과'가 되어서….
경제가 침체된 탓에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어려워 많은 젊은이들이 걱정을 하고 있다. 취업하기가 너무 어렵고 따라서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되었으니, 대학생들의 초조한 마음이나 취업에 대한 갈망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졸업을 바로 앞두고 휴학을 하겠다며 상담을 청하는 학생도 많아지고, 4학년 1학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벌써 '취업을 하게 되었으니 출석에 편의를 봐 달라'는 학생들이 간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반가움 반 걱정 반으로 '어느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었는가'를 물어보면 대개 대답은 썩 시원치가 않다. 전공과는 무관하게 친척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 나가게 되었다거나, 우선 아버지를 도와드리며 아르바이트 겸 일을 배우다가 완전한 직장으로 옮기겠다는 등등.
그러나, 대도시 백화점의 대형 슈퍼마켓이나 대단위 아파트 단지의 고급 과일가게를 머릿속에 그려보자. 높게 차려진 진열대 위에 점잖게 올라앉아 밝은 조명을 받아가며 부유한 사모님들의 시선을 집중 받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 시골장터의 멍석 위에 주루룩 쏟아 부어져 “골라! 골라!” 외침 속에 떨이로 팔려나가는 '가마니 사과'와는 그 대접이 사뭇 다를 것이다.
조금만 더 참고 준비를 하자. 아직은 봄도 다 지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직장을 잡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만큼 딱하고 어려운 사정이 있다면 모른다. 또는 누가 봐도 힘들고 어려운 경쟁을 뚫고 선발되었기에, 일생에 두 번 다시 오기 어려운 취업의 기회를 포기 할 수 없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런 사정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너무 초조해하고 서두르지는 말아야 한다. 학교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대학생으로서 조급한 취업보다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뜻있는 일인 것이다. 아무리 취업이 어렵다 해도 그럴수록 전공 공부에 매진하고 관련 자격증도 취득하며 외국어 실력을 쌓아간다면 기다리던 기회는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려면 지루한 장마도, 뜨거운 태양도, 모진 태풍도 묵묵히 견뎌내야만 한다.
지금은 아직 책과 씨름하며 속으로 크고 단단하게 실력을 키워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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