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녀유혼 |
‘천녀유혼’은 장국영 왕조현 주연의 1987년 작, ‘천녀유혼’의 리메이크다. 풋풋하고 신비스러웠던 장국영-왕조현의 아우라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엽위신 감독은 원작에 과거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승부수를 던진다. 영채신-섭소천의 사랑 이전에 퇴마사 연적하와 섭소천의 사랑이 있었다는 거다.
흑산촌에서 퇴마사 수행을 하던 연적하가 그곳 난약사에서 요괴들과 싸우던 중 섭소천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다. 사부와 동료를 희생시키면서도 섭소천을 어쩌지 못하는 연적하는 그녀의 기억에서 자신을 지워버린 뒤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지킨다. 주인공을 영채신에서 연적하로 옮겨 놓은 것.
원작에서 우마가 연기했던 연적하는 훨씬 젊고 잘 생긴 고천락이 맡았다. 연적하와 섭소천의 사랑에 뒤늦게 끼어든 제3자 꼴이 된 영채신은 ‘매란방’의 여소군이, 섭소천은 ‘포비든 킹덤’의 유역비가 연기한다.
여기에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액션을 강화했다. 국내기술로 빚어진 CG의 때깔은 끝내준다. 원작을 능가하는 호쾌한 무술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그래서 장국영-왕조현의 아우라를 지워냈을까. 미안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장국영과 왕조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유역비는 왕조현보다 훨씬 청순한 아름다움을 뿜어내지만, 정자에 앉아 고고한 자태로 거문고를 타던 왕조현의 신비한 매력엔 미치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왕조현이 다른 요괴들로부터 장국영을 보호하기 위해 욕탕 속으로 밀어 넣으며 키스를 나누는 사랑스런 장면이 이번 영화엔 없다. 판타지 멜로에 볼거리 판타지는 있지만 정작 멜로가 빠져버린 탓이다.
‘청순 요괴’ 유역비의 매력은 클로즈 업 할 때마다 빛을 발하고, ‘죽음과 맞바꾼’ 연적하의 사랑도 안타깝다. 그러나 섭소천의 기억을 봉인할 수밖에 없었던 연적하의 애절한 사랑을 담아내지 못했기에 요괴와 인간의 사랑은 가슴 서늘하지도, 가슴을 후벼 파지도 않는다.
엽위신 감독도 장국영-왕조현의 아우라를 넘어서는 건 무리라고 판단한 듯하다. 영화의 엔딩타이틀에 ‘장국영을 영원히 기억하며’라는 자막이 뜨고 그가 부르는 주제곡을 들려준다. 장국영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지 어느새 8년. 그리움과 아쉬움에 가슴이 먹먹하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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