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일 사회단체팀장 |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선물 '바보야'를 설명해주는 카피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2주기를 맞아 부활절을 앞두고 그의 일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바보야'가 개봉됐을 때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지난해 대학원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언론 활동과 언론관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필자는 김 추기경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열린음악회'에서 가수 김수희의 대중가요 '애모'를 개사해서 부르는 모습이 스크린에 비칠 때 독실한 가톨릭신자이자 김수환 추기경의 동성고 후배인 영화배우 안성기의 내레이션이 흐르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김 추기경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나던 순간부터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영화가 종영되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한국의 슈바이처 박사'처럼 살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를 봤을 때 흘렸던 뜨거운 감동의 눈물이 김 추기경의 '바보야'로 인해 또한번 깊은 감동과 울림 속에 확대 재생산 되는 느낌이었다.
신 앞에 엎드려 사제서품을 받을 때부터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을 꿈꾼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 불렀다. 그의 일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 '바보야'는 이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났던 그의 삶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워줬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된 종교 지도자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역사의 산 증인으로 살아 온 인고의 삶까지, 김 추기경의 모든 것이 담긴 다큐멘터리 '바보야'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을 선물했다.
김 추기경은 생전에 수시로 판자촌과 여성 쉼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방문해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사회 속에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을 몸소 보여주었고 국민이 원하면 언제든지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조언을 해줬다. 김 추기경은 평생 약자들의 곁에서 그들의 발을 씻어주고 손을 잡아주며 세상 속에서 불의와 불행에 맞서다가 2009년 2월 16일 오후 6시 생명 연장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병석에서도 “(내 몸 중에서) 더 줄 것이 없는가”를 늘 물었던 김 추기경의 시신 중 각막은 두 사람에게 빛이 되었다.
김 추기경의 시신을 감싼 수의는 생전에 가난한 여성들의 모임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김 추기경의 정신적 스승인 형 고 김동한 신부는 혹여 동생에게 누가 될까봐 평생 외진 곳에서 결핵환자들과 함께 하며 온전하게 헌신했기에 김 추기경은 평생 형 김동한 신부를 동경하고 존경하며 살았다. 그가 말년에 보여준 정치적 입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해도 김 추기경이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만한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아닌 행동하는 사랑을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은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빛났던 성직자였고 자신을 낮추어 바보라 부르는 겸손함의 대명사였다.
한국사의 격동기 시절 종교를 넘어 사회의 가장 큰 어른이자 약자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김 추기경은 우리가 공유하고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김 추기경이 몸소 전하던 사랑의 메시지가 그리워질 때 한 사람의 위대한 삶이 보여주는 교훈을 가슴 속에 깊이 남게 한 다큐멘터리 영화 '바보야'를 만나볼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서산에 노을이 물들면 고향집이 떠오른다던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하지만 평화롭던 그 고향집을 꿈꾸며 살았다. 모든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온전히 사랑해준 그의 바보 사랑은 삶에 지쳐 피곤하고 힘든 우리들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감싸 안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년 걸렸다.”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그리고 용서하라…”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메시지가 거대한 울림이 되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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