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두 우리 거라면 이 세상 전부 사랑이라면, 날아가고파 뛰어 들고파, 하지만 우리는 여고졸업반….”
▲ 써니 |
그때 그 시절, 소녀들의 유쾌하고 아픈 성장담이자 이젠 누구 엄마로 불리는 40대들의 아련한 추억담이다.
'강남주부' 나미의 일상을 비추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잘 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 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이지만 속은 헛헛하다. 엄마 병문안 간 병원에서 우연히 고교시절 친구 춘화를 만나면서 나미는 잊고 있던 25년 전 시절을 떠올린다.
전남 벌교에서 서울로 전학 온 나미는 무스로 머리를 세우고 나이키 신발을 신은 서울 아이들에게 기가 죽는다. 하지만 '학교짱' 춘화가 호감을 보이면서 자연스레 외모꾸미기에 열심인 장미, 입만 열었다 하면 욕인 진희,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하이틴잡지 표지모델 얼음공주 수지와 '써니'라는 이름으로 뭉친다.
일곱 소녀는 보니엠의 '써니'에 맞춰 춤을 추고, 수려한 외모의 '오빠친구'에게 빠져들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우리 중에 하나를 건드리는 건 전부를 건드리는 거잖아!”하며 우스꽝스럽게 비분강개하기도 하고 친구를 위해 상대 그룹과 '맞짱'도 마다 않는다.
대한민국 평범한 소녀집단을 대표하는 듯한 써니의 멤버들은 80년대의 기호들, 이른바 디스코바지와 카세트테이프, 치켜 올린 앞머리, 나이키와 짝퉁 나이스 등과 맞물리고 각각의 에피소드와 어우러지면서 소녀들만의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투 경찰과 학생 시위대 간 격렬한 충돌이 있던 날, 써니가 상대 그룹과 드잡이 질하는 장면은 시대의 아픔을 불편하지 않게 상기시키는 명장면이다.
나미가 친구들을 찾는 건 추억을 찾는 행위이며 꿈을 찾는 일이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도전이다. 죽음을 앞둔 춘화가 나미에게 “친구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하는 인사나, 나미가 춘화와 “누구 엄마로 불리면서 까맣게 잊어버렸던 자신의 이름을 찾게 됐다”고 나누는 대화는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게 뭔지를 들려준다.
어버이날, 딸과 엄마가 함께 보면 좋겠다. 한바탕 웃고 그치는 게 아니라 극장 밖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다. 추억의 노래들, 턱 앤 패티의 '타임 애프터 타임', 보니엠의 '써니',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 나미의 '빙글빙글', 최호섭의 '세월의 가면' 등등, 추억의 길동무가 돼준다.
그래서. 25년 만에 만난 써니의 멤버들은 어떻게 됐냐고? 그게 알고 싶으시면 영화가 끝났다고 바로 일어나지 마시고 기다리시길. 5분가량의 엔딩 크레디트 뒤에 그 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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